묵상자료 8187호(2023. 10. 16. 월요일).
시편 시 24:7-10.
찬송 7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일어나는 소박한 일들을 일컬어서,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라 칭하곤 하지요.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처럼, 늘 있는 예사로운 일이라는 뜻에서 다반사가 붙여졌습니다. 하지만 다반사는 평범하다 폄할 수 있을 만한 일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순간으로 꼽는 때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보내는 그런 시간일 수도 있거든요. 물론 아무의 방해도 없이 혼자 느긋하게 즐기거나 혹은 곁에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해야 가능한 일일 테지만 말입니다. 향이 좋은 차 한 잔을 들 때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집니다. 음악과 더불어서 말이지요.
언젠가 결혼기념일에 백자 다기세트를 장만했다는 친구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깨지기 쉬운 그릇에 부부의 귀한 연을 담는 것이, 조금은 위험하지 않을까 염려도 했습니다만, 친구 부부의 설명을 듣고 나니까, 수긍이 가더군요. 차심 혹은 다심 이라고 부르는 것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다기는 세제를 쓰지 않고 씻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물로 헹구어 내고 물기를 닦아 말리면, 주인이 마신 차의 빛깔이 점점 다기에 고스란히 배게 마련이라고 합니다. 한해 한해 함께 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단아했던 하얀 백자가 부부가 함께 나누어 마셨던 차의 빛깔이 진하게 물들어 가겠지요. 그 모습에서 부부는 서로의 시간을 짐작해 나갈 테고 말입니다. 특별할 것 없이 그저 매일 매일 곁을 지키기만 했던 것이, 왠지 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0월 16일 방송>
2. “사마리아인의 시조(24-41절)”을 읽었습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사람이나 나라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을 섬기느냐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날의 현대인들 특히 크리스천들이 이런 성경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제가 오는 22일 주일에 대구 베델교회에서 2시간짜리 특강을 하게 되었는데, 이 문제를 취급할 생각입니다. 미국 위스컨신 주에 있는 베델루터교회의 담임이셨던 스위감 목사님은 자신의 교인들에게 매일 성경을 단 한 줄이라도 읽는 사람이 몇 명인지를 조사해 봤다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단 1%의 교인만이 매일 성경을 읽는다 답했다 합니다. 우리의 현실은 그보다 못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매일의 묵상이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합니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상은 하나님의 실존이신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우리가 가장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이, 우리는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지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들을 붙들거나 불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거의 예외 없이 말입니다. 수만 명의 교인을 자랑하는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그 대표격입니다. 대부분 교회 재정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그 증좌입니다.
호세아는 북왕국 마지막 왕으로, 그는 앗수리아에 패해서 조공을 바치던 중에 이집트에 밀사를 파견 한 것이 들통나 감옥에 갇히고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아를 점령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다가 앗수리아로 이주시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에는 바벨론과 구다, 아와와 하맛 스발와임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사마리아를 채웠습니다. 사마리아를 이방인의 땅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미 사마리아는 높은 언덕과 우거진 나무 아래에는 우상을 섬기는 제단들로 넘쳐나고 있었숩니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자신들을 노예생활에서 자유를 되 찾아준 하나님을 버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허수아비 신인 우상을 섬기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들의 뜻대로 살고 싶어한 때문입니다.우리들 인생을 만물의 걸작으로 만드시고 당신과 대화할 상대로 삼으시려고 당신의 형상을 따라 빚어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제 마음대로 살고 싶은 그 어리석은 욕망에서 우상숭배를 끌어들여다는 말입니다. 진실하고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는 것보다는, 아담이 그러했듯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해 보려고 불순종의 길을 택했다는 말입니다. 이런 슬픈 역사는 어느 한 시대도 멈추질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야훼를 참으로 공경하는 사람이 없었다.”(34절)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는데,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은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길을 의미하는데, 하나님과 우상에게 양다리를 걸친 크리스천들이 지금도 우리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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