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33(2024. 3. 10. 사순절 넷째 주일).

시편 시 50:19-21.

찬송 51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시인의 시집 제목인데요. 재미삼아 여러 가지로 슬쩍 변용해 볼 수도 있겠지요? 후회하니까 사람이다. 실수하니까 사람이다. 흔들리니까 사람이다. 이렇게도 얘기해 볼 수 있겠지요. 오후의 피곤이 조금 더 빨리 느껴지는 월요일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지. 이렇게 좀 더 관대하게 말해 주는 마음의 영양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939일 방송>

 

2. 사순절 넷째 주일의 복음서 요 3:14-21을 본문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교회력은 우리 주님의 생애를 살피는데 가장 바람직한 안내서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고난 한 복판을 살아가면서도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더욱 더 기피하는 주제입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의미가 있습니다.

 

놋뱀 사건은 십자가 사건의 예표이면서 신앙의 신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14-15, 21:4-9).

광야 생활 40년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신앙을 배우는 다시 없는 기회였지만, 깨달은 자는 극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소위 체험 신앙의 약점이 고스란히 밝혀진 셈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0년이란 긴 세월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기적 속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매일 이른 새벽에는 만나를 내려주셨고, 석양에는 메추라기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메마른 광야에서 맑은 샘물을 마실 수 있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사막의 더위와 추위를 이겨내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의 입에서는 원망과 불평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불뱀사건이었습니다. 원망하는 사람들을 불뱀에 물려죽게 하신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로 불뱀에 물린자는 높은 장대 끝에 매단 놋뱀을 바라보게 하셨고, 바라보는 사람을 죽음에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놋뱀을 바라보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은 죄와 죽음에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이란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진심/眞心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에 달려있습니다(16-18).

한국교회는 알미니안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적인 타락을 시인/是認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인간 자신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양 유혹합니다. “지금 당장 죽어도 천국갈 수 있다 확신합니까?” 하고 인간의 확신 여부에 구원이 달린 듯 가르칩니다. 그러나 인간의 확신이란, 바람에 나부끼는 초개(지푸라기)보다 믿을 게 못됩니다. 그렇게 확신을 힘주어 말하던 베드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에서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마감되었습니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총을 가르쳐야 할 루터교회와 장로교회가 제 구실을 못하는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인지, 매순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향해서 최선을 다하려 힘써야 구원받은 성숙한 신앙인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빛과 소금으로 세상을 사는 모습입니다.

 

십자가는 구원받은 모든 크리스천이 짊어지고 있는 모습이어야 합니다(19-21).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는 십자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무리 교회당이 크고 봉사 활동이 활발하다 하더라도, 십자가를 찾을 수 없다면 기독교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역교회 목회자들이 생활고를 겪고, 예배당이 비가 새고 이런저런 고초를 겪는다고 해도,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십자가를 기대하고 출발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준 사람들은 자신의 전 생명을 주님께 맡기고 살았던 헌신자들이 시대마다 우뚝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고후 5:17).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뿐 아니라, 순간 순간의 삶의 갈림길에서 향방을 선택하게 될 때는(고전 9:26), 반드시 기준이 되고 원칙이 되도록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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