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40.

시편 시 51:17-19.

찬송 13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지/奧地의 마법사를 찾아 떠났던 도로시 일행과, 행복을 찾아 파랑새를 찾으러 나섰던 치르치르와 미치르, 이상/理想을 향해 말을 몰고 떠나는 돈키호테, 이 모두가 부럽습니다. 그들이 찾은 교훈과 행복한 결말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힘들게 하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는 점에서요.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며칠의 여행도 현실을 걱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마음이 막힘없이 자유로운 사람이 가장 부럽습니다. <KBS FM 1, 가정음악, 2009318일 방송>

 

2. 사순절 다섯째 주일의 구약성경 렘 31:31-34을 본문으로 새 계약의 특징들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문명사회란 복잡다단한 사회 구성원들을 질서정연하게 통제할 수 있는 규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 나라는 자신들만의 헌법을 제정하고 그 헌법에 따른 규약들과 시행령을 만들어 사회와 나라의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 계약이라는 말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개정된 새로운 규율이 필요해졌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새 계약이란 어떤 것입니까?

 

예레미야가 소개하는 새 계약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31-33).

선거철이 되면 사람들은 많은 변화를 기대하기도 하고 실제로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변화는 내용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용을 바꾸는 일은 엄청난 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시간도 필요하고, 절차와 과정이 복잡할 뿐 아니라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형식을 바꾸는 것은 그에 비해서 훨씬 더 단순하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계약의 내용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그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약 내용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새 계약을 요청하는 쪽이 하나님이라는 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약을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맺게 될 새 계약은 종이나 돌에 새긴 것이 아니라, 그 백성의 가슴에 새기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시니 이스라엘은 가슴에 새긴 계약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 계약을 가슴에 새기는 효과는 그 백성을 용서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34).

유대교나 기독교의 진리를 오해하거나 곡해하는 사람들의 치명적인 문제는 모든 문제 풀이의 주체를 인간 편에 두는 일입니다. 유대교는 율법을 더욱 더 철저히 지킴으로 구원에 이르려 하는 것이고, 기독교의 아류들은(알미니안)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 미안해서, 희미하게 남아 있는 자유의지로 자기 공로를 발휘하려고 합니다.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 방법입니다. 이는 일반 종교가 주장하는 선행과 수행으로 완덕/完德에 이르려는 노력과 한 치도 다를 바 없습니다. 성경의 중심점이라고 할 요 3:16은 하나님의 사랑이 주어가 되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그리스도(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이고, 진리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이 십자가의 도를 구원의 표지/標紙로 삼았고 증거하였습니다.

 

새 계약은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 뿐 아니라, 기독교 구원의 뿌리가 되었습니다(4:12, 21:9).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 예수를 변호하며 외친 증언입니다. 이 증언은 기독교는 더 이상 종이나 돌비에 기록된 계약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령에 새겨진 계약을 지킬 무리임을 온 천하에 밝힌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질문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옛 계약은 무엇이고, 새 계약은 무엇입니까? 옛 계약은 종이와 돌비에 새겨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 곧 십계명을 비롯한 613가지 계명들입니다. 그렇다면 새 계약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을 믿는 그 한가지 입니다.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 예표가 유대광야에서 시연되었고, 모세가 바로 그 증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인 십자가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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