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77(2024. 8. 1. 목요일).

시편 76:4-6.

찬송 338.

 

1.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홍길주(1786~1841)19세기 전반에 활동한 학자로 보기 드물게 현수갑고, 표롱을첨, 항해병함, 수여삼필, 수여방필, 수여연필, 수여란필, 기하학이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서 수여연필/睡餘演筆에는 이런 글이 있다. “일 중에 오늘 해도 되고, 열흘 뒤에 해도 되는 것이 있다면, 오늘 즉시 해치운다. 오늘 해도 괜찮고 일 년이나 반년 뒤에 해도 괜찮은 것이라면, 한쪽으로 치워둔다. 이것이 일을 더는 중요한 방법이다(省事要法).”

    “해도 해도 일은 끝없고 가도 가도 길은 멀다. 속도만 숨가쁘지, 손에 쥐어지는 것이 없다. 불안해서 더 하고, 그럴수록 더 불안하다. 한 가지 일을 마치면 다른 일이 줄지어 밀려온다. 일생에 편한 날은 없을 것만 같다. 산적한 일 앞에 비명만 질러대느니, 일을 덜어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처방이 절실하다.” 정 민, 옛 사람이 건네 네 글자, p.160.

 

2. 저는 90년대 초부터 목회 일기라는 것을 써왔습니다. 그러다가 은퇴를 한 후에는 생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생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주로 그날그날 있었던 일과 날씨 얘기와 세끼 무엇을 먹었는지 그리고 국내외에서 일어난 주요사건들 등을 기록하는데, 아주 가끔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어떤 이야기를 할 때 확인할 때 요긴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매우 요긴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제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를 살피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새벽기도회의 내용과 참석자들을 적기 위해서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묵상자료가 바통을 이어받게 되고, 동시에 묵상자료를 읽은 이들의 이름도 적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묵상자료를 보낼 때 처음 10여년은 한 밤중인 12시를 전후해서 보내다가 아주 나중에서야 예약 메일함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조금 일찍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묵상식구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새벽형과 아침형 그리고 오전형과 저녁형으로 말입니다. 갑자기 일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입니다. 모든 기록이란 생방송으로 뉴스를 보내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사건들은 저처럼 일기를 쓰듯 어떤 역사적인 사실만이 아니라,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문서로 복음을 전하는 소명의식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하나님의 일처럼 원대한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의식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가령 복음서는 바울 사도의 서신들을 읽었던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가령 마태복음서의 기자는 구약 말씀에 길들어 있는 유대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그 연결점을 잘 활용하였고, 마가복음서는 주로 이방인 기독자들에게 기독교의 진수인 복음을 전할 분명한 목적에서 기록하였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일화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스승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는 부끄러운 이 일화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종종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념이나 신앙을 부인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자신의 가족이나 소중한 이웃들 그리고 스승과 동료를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부인한다는 것은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니고, 그렇게 유별한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럴 것입니다. 소년과 소녀 시절에 가졌던 그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꿈과 목표를 부인하고 전혀 엉뚱한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제가 자란 시골 마을에는 병원이 단 한곳 있었는데, 제가 다니던 교회 장로님이 의사이셨습니다. 따님이 몇 분 되었고, 아드님이 저보다는 세 살 위였는데,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1-2년만 더 다니면 졸업도 하고 의사가 되기 직전에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의사가 되는 길과 되고 나서도의 삶은 어려운 일이라는 걸 오랫동안 보아왔을 것입니다. 돈을 잘 벌수 있다 해도, 매일 피와 고름 그리고 수술환자를 치료할 때는 온갖 악취를 맡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생수 장사를 시작했다 합니다. 베드로도 그랬을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임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렇게 힘든 삶을 살 것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모든 배신과 모든 부인의 길에는 쉬운 길을 택하는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영원한 가치를 셈하지 못한 때문일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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