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05(2025. 8. 29. 목요일).

시편 78:63-64.

찬송 7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나 경험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한다. 그러니 이를 초월한 신앙의 세계를 어떻게 자신의 의지로 들어설 수가 있을까? <신곡/La Divina Commedia> 단테가 20년간 자신의 조국에서 추방되어 방랑하면서 저술한 작품이었다. 지옥편 34(1300-1308), 연옥편 33(1313), 천국편 33(유고/遺稿)로 세상에 나왔다. 그가 책에서 남긴 명언은 추위에서 떨어본 사람이 태양의 소중함을 알듯이, 인생의 힘겨움을 통과한 사람만이 삶의 존귀함을 안다. 인간은 모두 경험을 통해서 조금씩 성장해 간다.” 그러니 사후 세계인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은 단테의 경험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성경읽기, 교회와 사회생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등이 그의 경험을 이룬 뿌리들이었다.

 

2. “빌립과 이디오피아 내시(26-40)”을 읽었습니다. 건국대학병원 쪽 버스정류장 부근에는 21조의 전도 팀이 있는데, 여호와의 증인들이었습니다. 언제나 단정한 차림에 정숙한 자세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성경공부를 권하고 있습니다. 목사로써 저는 이런 분들을 볼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어느 사회나 자신을 소수자(minority)라고 생각하면, 남다른 열심과 투지가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다수자(majority)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여유로워지고 소극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경을 읽으면서 광야 길을 지나가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빌립집사가 다가가서 그에게 도움을 주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세를 좋게 이해한다면, 저는 마땅히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문자적 성경 해석(144,000명 구원설 등)이나, 시한부 종말론이 가진 협의의 성경해석을 고쳐줄 생각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이단 사상에 굳어버린 사람들은 투쟁적이고 순교적인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시도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게 조계종에서 법사로 불리는 초등학교 고향친구가 있는데, 그는 대학 때가지 크리스천으로 살다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불교로 개종한 사람이기에, 우리는 서로의 신앙과 종교에 대해서 가타부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앙은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수학공식처럼 정답이 딱 떨어지지 않는 한 저마다의 인격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디오피아 내시는 진리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사람이었고, 빌립집사에게 자신의 부족함과 필요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이 그가 읽고 있는 성경의 내용을 아시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솔직하게 자신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자신의 현실을 토로합니다. 이런 사람이 전도의 대상자로써 안성맞춤입니다. 전도 대상자의 신앙적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훨씬 더 빠르고 적절한 전도자로써의 기지가 발휘될 수 있는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내시가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이사야 53:7-8의 말씀을 함께 읽게 되었고, 피차에 문제의 핵심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시는 빌립집사에게 질문을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두고 한 말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두고 한 말인지를 묻습니다. 빌립집사는 성경의 여러 곳을 소개하며 예수에 관한 말씀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말하는 구세주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시는 자신이 세례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말하면,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려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세례예식을 마치고 물에서 올라오자, 성령께서 빌립집사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셔서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디오피아에서 온 내시는 기쁨이 넘쳐서 가던 길을 가게 되었으며, 빌립 집사는 아스돗과 여러 마을을 찾아다니면 복음을 전하고 마침내 가이사라아 이르게 되었다고 마치고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다(예수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복음을 전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 자체로 신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감동감화 시키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저의 두 번째 임지였던 부산 수영구에 있던 교회 앞에는 부산에서 첫 번째로 세워진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독실한 불자/佛子 할머니가 가끔 교회 마당에 있는 어린이 놀이기구를 어린 손자와 이용하셨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그 할머니는 놀라운 얘기를 했습니다. 자신은 불자로 장손이 저의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독실한 불자가 되기를 기도했는데 낭패가 났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 아이가 불자로 자라왔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천으로 살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의 지혜나 의지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인력으로 되는 일이 있습니까?” 할머니의 마지막 대답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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