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5035(2015. 2. 28. 토요일).

시편 시 103:19-22.

찬송 9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헤어짐에 관한 큰 고민이나 예감을 안고 여행을 떠났던 이들은, 그 작고 사소한 박물관 전시품들에 울컥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답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상대방에게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진심어린 사과를 결심하기도 하지요. 그런 이들이라면 돌아와서 사과할 때, 이런 점들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한 잡지에 실린 글에 의하면,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사과 말은 절대 피해야 한답니다. 미안해, 근데 말이야하면서, 자신도 여전히 억울하다는 식의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 “내가 잘못하긴 했는데, 당신도 가끔은하면서 상대방의 잘못을 끄집어내려는 것. “나도 아는데, 난 그냥이라면서 자신을 먼저 변호하려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또한 별 것 아닌 걸 갖고 당신이 화를 내니까, 나도 그렇지.” 하면서 원인을 상대방에 전가시키려는 것. “이런 걸로 싸우지 좀 말자.” 말도 좋은 화해 제안 같지만, 실은 말만 앞세우는 좋지 않은 사과방법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사과도 지혜롭게 하면서 정말 소중하다면, 헤어지거나 헤어질 뻔한 관계도 잘 복원해서, 깨진 관계 박물관 전시물 주인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4123일 방송>b.

 

2. 오래 전에 한국의 한 교파에서 목사와 장로의 직분에 대해서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장로직과 목사직이 동일하다는 주장이 우세해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에서 사회나 설교를 장로직을 가진 이들이 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축도 역시 할 수 있다는 강한 요청이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장로직과 현재 한국 교회가 안수하는 장로직을 같은 직분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적인 훈련을 전혀 받은 일이 없는 장로님들이 설교를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고지식한 목사보다 사회 경험이 풍부한 장로가 훨씬 입담도 좋고 은혜스럽게(?) 설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파 신학교에서는 큰 위기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러다간 신학교의 존재감이 무색해지고, 바야흐로 한국의 강단이 춘추전국시대마냥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 우려한 것입니다.

 

바로 이 때 혜성처럼 나타난 신학자가 있었는데, 예배학 교수였습니다. 그 분은 축복선언에 관한 민수기 6:22-26의 말씀을 성경적 근거로 삼은 것입니다. 소위 <아론의 축도>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말씀으로 아론의 자손 곧 레위지파에서 뽑힌 제사장들만의 고유권한으로 축복선언을 맡겼다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사장의 자격과 역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백성을 위하여 속죄 제사를 드릴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같은 제사를 드릴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대제사장의 역할을 예수님께서도 받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직분은 자기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직분이라고 말입니다. 그 근거로 아브라함 시절에 제사장 역할을 했던 멜기세덱의 계열에서 예수님이 나오셨다고 말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습니다.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위치했던 중보자 노릇을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백성들을 위해서 속죄제를 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임무를 하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언제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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