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6장 60-69절

예수님의 인기가 바닥에 떨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오직 열두 제자들만 남고 그 많던 사람들이 떠나가 버리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신앙하는 근본 이유와 목적이 퇴색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이 보물처럼 
값진 것인데도, 오히려 헛된 것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행동_1


신앙의 첫 단계는 경험적이나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다양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출발점을 보면 대체로 경험적인 신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만, 따뜻함과 위로, 특별한 종교경험 등을 가진 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적인 신앙이 순수하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수많은 무리들이 바로 이런 범주에 드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들은 떡을 
먹었고, 수많은 기적들을 목격하였습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시는 장면도 보았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자리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경험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또한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관적인 신앙이 
아니라, 객관적인 신앙 혹은 공유하는 신앙의 차원으로 자라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따뜻한 미소와 부드러운 
감촉으로 사랑에 눈뜨게 됩니다. 어머니를 통해서 배우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자신만 독차지하는 사랑이 아니라,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도 나눠주어야 할 어머니의 사랑임을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런 폭을 넓히는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행동_2


신앙을 보물처럼 소중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지척에서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어떻게 한 순간에 발길을 뚝 끊었을까를 생각합니다. 그들이 가졌던 신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6:26). 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목적이 충족되는 한 가치가 있습니다. 목적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하면 
언제든지 내다 버릴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근면하고 성실한 생활태도를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과 강건한 삶을 살도록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신앙은 초보적인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신앙하는 일이 보물처럼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여겨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신앙을 확실히 가진 
사람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자신과 동행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알 수 없는 시련과 역경을 만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맞이하는 고난은 기쁘게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그에게 보물입니다. 

 행동_3


신앙을 생활 속에서 꽃 피울 수 있어야 합니다.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 시대에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을 혀끝에만 달고 다녔지 
생활 속에 옮겨놓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문은 분명했습니다. 너희도 저 무리들처럼 
나를 떠나가려느냐? 고 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는 똑똑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겠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고 생활에서는 부인한다면, 이것은 엄청난 
잘못입니다. <두 아들> 비유에서 예수님은 차라리 입으로는 부인했지만, 나중에 행실을 바로 가진 둘째 아들을 
아비의 뜻대로 행하였다고 칭찬했습니다(마 21:31). 1950년대 현동완이란 분은 장관에 두 번씩이나 발탁이 됐지만 
사양하고, 난지도에서 여생을 살았는데, 3가지 결심을 실천에 옮겼다고 합니다. 국고를 위해서 커피를 마시지 않고, 
세계평화를 위해서 고기를 먹지 않으며, 고아를 위해서 하루 한끼를 금식했다고 합니다. 
행동하는 신앙이 절실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설교를 머리로만 듣고 있습니다. 행동에 옮기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숱하게 하나님과 약속합니다. 어떻게 그 책임을 짊어지려고 하십니까? 듣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모래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행동하는 신앙인들의 주님이십니다. 실천적인 신앙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주님, 우리로 믿는바를 행동으로 옮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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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14일 박성완 목사님의 주일예배 설교문입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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