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이란 책을 쓴 학자가 있었습니다. 한 미디 말이 슬픔을 멎게 만들고, 한 마디 말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말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힘이 말씀에 근거하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존재하십니다.
요한복음서 기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중략>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고 증거합니다(요1:1).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읽혀지지도, 설교되지도 않는 곳에는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최상의 복이라고 고백합니다(시1:2). 그 말씀을 묵상하려고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다고 간증합니다(시119:148). 말씀을 발의 등과 길의 빛으로 삼았고(시119:105), 정금보다 더 사모(思慕)하고,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했습니다(시19:10). 하나님을 어떤 신비현상 가운데서 만나려고 하는 것은 성경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 가운데 언제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들, 건강과 사업, 희망과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 가운데서 우리를 복주시는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에 있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창1:3) 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되라”(창12:2)하시니 아브라함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엘리펀트맨>이란 기형으로 생긴 사람이 서커스단을 따라다니며 살다가, 한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했습니다. “너는 내 형상으로 지은(창1:27) 가치 있는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인생에 대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실패한 인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얘기들이 성경 안에 가득합니다. 베드로와 삭개오가 그랬고, 바울과 오네시모가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간절히 사모하는 은총이란 오직 말씀 외에 다른 무엇으로는 허락지 않으시는 것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능력을 주시는 말씀을 너무 멀리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문제는 다양합니다. 공교육을 살리려는 정부와 엘리트 선발이 더 중요하다는 서울대간에 한판 싸움이 벌어질 것 같고,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나라들은 테러의 위험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한반도의 핵화나 북한의 인권사각지대도 큰 문제입니다. 비정규직의 문제, 덤프트럭에 대한 차별대우도 문제입니다. 어디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깜깜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이건 사회적이건, 국가적이건 간에 모든 문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곳에,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850명을 대상으로 싸울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길 수 있었고(왕상18:19-40), 엘리사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으로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쳤고(왕하5:14), 여리고성 기생 라합은 말씀을 의지하여 살수 있었던 것입니다(수2:1).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 곁에 계십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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