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505(2010. 12. 21. 화요일)

시편 시 22:5-8.

찬송 36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일상의 사물들을 새롭게 돌아보는 사물에게 말 걸기. 오늘의 사물은 <교복>입니다.

학창시절을 담은 흑백 사진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본 사람들이 저마다 , 이거 내 사진 아니야? 이거 우리 학년 때 친구들 아니야?” 라고 얘기합니다. 실은 전혀 아무 관련 없는 낯선 사람의 사진이지요. 그 안에 있는 교복이며 머리 차림새가 다 똑 같고 거기다 흑백 사진이다 보니, 순간적으로 다들 그렇게 착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 착각은 새삼스러운 추억을 불러내기도 해, 학창시절 그렇게 갑갑하고 벗어나고파 하던 교복을, 마냥 그립고 아쉬운 옷으로 되돌려 놓기도 하지요. 그러나 1983년부터 86년여까지 2년 동안, 중고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에겐, 교복의 추억이 훨씬 덜합니다. 교복 자율화 시대였으니까요. 학생들 본인들에겐 자유로웠을 그 시기에, 학부모들은 옷 챙겨주는 일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아우성이었지요. 선생님들도 선생님대로 생활지도에 문제가 많다고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교복이 재등장했고요, 그런가하면 교복으로나마 어떻게든 멋을 내보고, 어른 티를 내려는 학생들의 노력 역시,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에는 그런 노력이 일부 학생에게 국한된 일이었거나, 그런들 여학생의 경우 치마 단을 한 두 단 말아 올려서 치마 길이를 좀 짧게 하는 정도였다면 요즘은 훨씬 많은 학생들이 교복 수선에 나선 듯합니다. 치마 단을 말아 올리는 게 아니라, 교복 상하의를 완전히 수선해서 새로운 맞춤복으로 입다시피 하지요. 한 어머니는 그런 딸의 흉을 살짝 보면서, 딸이 여름철 하복 상의의 품을 얼마나 좁게 수선했는지를, 배냇저고리 옷을 올려놓고 비교해 보이기도 했는데요. 치마도 주름을 다 없앤 채 얼마나 딱 맞게 줄였는지, 저 치마를 입고 걸을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버스에도 잘 오르더라고. 하지만 그러다 번번이 치마 단이 뜯어져서 수시로 자신을 재봉틀 앞에 앉게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렇게라도 빨리 교복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던, 빨리 어른이 돼 마음대로 살고파하던 학생들도, 막상 어른이 되면 그 갑갑하던 교복을 그리워하기도 한다는 것. 그게 바로 인간이 세월을 이길 수 없고, 지나간 시간의 추억과 그리움을 이길 수 없는, 가장 큰 약점이랄까요? 한계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교복을 떼어놓고, 청소년기를 십대를 되돌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교복은 우리 학창시절을 담을 가장 큰 사진첩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KBS FM 출발과 함께. 2010. 12. 3 방송>

 

2. 모든 예언서의 특징이기도 합니다만, 예언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계시의 성격을 띄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들어나 보여주고 있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언의 말씀들은 언제나 특별한 시대정황을 배경으로 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사야가 살던 시대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트려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지 않게 될 때, 우상의 문제를 비롯 모든 문제가 발생할 수 밖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십계명의 첫 계명이 흔들리게 되면 모든 계명은 다 무너져버리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안으로는 사회정의가 자취를 감추게 되고, 밖으로는 하나님이 아닌 이방 세력을 의지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눈으로 본문을 읽는다면, 시대의 문제가 보이고, 그런 시대를 극복할 대안도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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