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937.

시편 125:1-5.

찬송 34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을까요? 마티스가 말했습니다. “본다는 것은 그 자체가 노력을 요하는 창조적 작업이다. 우리가 일생생활에서 보는 모든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스펙된 습관에 의해서 왜곡 된다. 현대와 같은 시대에는 더욱 그렇게 되기 쉽다. 영화 광고 잡지 등은, 우리를 매일 기성의 이미지들의 홍수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이미지들은 지성에 있어서의 편견과 같이, 우리의 시각을 왜곡 시킨다.” 그러니까 실은 내 눈이 아니라, 남의 눈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남들이 보는 대로 남들이 보아왔던 대로. 마티스는 이런 왜곡된 시각에서 벗어나려면, 모든 것을 어렸을 때 처음 봤던 것처럼, 새롭게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눈으로 난생 처음 바라보는 것처럼 바라보기. 그렇게 사람과 세상을 바라본다면, 좀처럼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126일 방송>

 

2. 오늘은 사순절 첫째 주일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신앙의 깊이와 넓이를 더하는 기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난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큰 축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가 겪었던 유대 광야 40년이나, 우리 주님의 광야 생활 40, 그리고 십자가 사건도 그런 엄청난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자신을 빚진 자로 생각했습니다(14).

사도는 자신을 빚진 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마치 무슨 자랑이라도 하듯 당당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한 두 사람에게 빚진 자가 아니라, 헬라인과 야만인, 지혜자나 우둔한 자모두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구체적으로 그들에게서 어떤 빚을 졌다고 말합니까? 소크라테스처럼 닭 한 마리를 잡아먹고 갚지 않았다던 지, 빌린 돈을 아직 갚지 않았다는 뜻은 아닌 듯합니다사도가 말하는 빛이란 어떤 누군가에게 빌리고 갚지 않은 그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엄청난 사랑과 축복을 받았는데, 그것들을 갚을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남의 닭을 잡아먹었으면 당연히 갚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처럼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 많다고 느낀다면, 그 은총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느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빚진 자입니다(14).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누구에게도 빚을 져본 일이 없다.” 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없이 빚진 자들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 베트남 선교 여행에서 많은 은총을 경험했습니다. 저와 통역자, 그리고 장차 의사가 되어 전문인 선교사가 되고 싶어하는 한 학생과, 선교사 학교를 운영해 보려는 당찬 꿈을 꾸는 목사 지망생과 5일 동안 생활하였습니다. 우리는 고산족 교회를 찾아가는 차중에서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눌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총이 넘치고 넘침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리고 또 어떤 방법으로 이 놀라운 은총을 갚아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그것이 바로 우리들 살아가는 이유이며 동시에 삶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빚진 자 의식이 필요합니다(15).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말하곤 합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만, 엄밀하게 얘기하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혹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고백한다고 하면, 우리의 삶의 의미와 목적은 다양한 것이 아니라, 단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삶의 내용이나 모습 등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삶의 의미와 목적은 언제나 동일해야 하는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표현은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빚진 자 의식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빚을 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진 빚은 너무나 큰 것이어서 다른 어떤 무엇으로 비교도 셈할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는 시간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나, 재능을 관리하는 일에 있어서, 그리고 물질이나 다른 어떤 것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지기 의식이란 빚진 자 의식과 닮았다고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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