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42호(2012. 9. 18. 화요일).
시편 34:15-18.
찬송 51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에 한국인의 푸드 마일리지가 공개되면서, 깜짝 놀라게 했는데요. 푸드 마일리지란 식품이 어느 곳으로부터 왔느냐에 따라서 마일리지를 부여하는 것으로, 먼 곳에서 올수록 마일리지가 커집니다. 곡물 축산물 수산물 등, 9개의 수입품목을 대상으로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식품 수송량의 수송 거리를 곱한 수치로 나타내지요. 이렇게 따져봤을 때, 2010년에 한국인의 연간 1인당 연간 푸드 마일리지는 톤당 7,850km, 2010년과 비교해서 37%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 수치는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높았고요. 프랑스의 푸드 마일리지 보다는 무려 10배가 높았는데요. 그만큼 한국인들이 먼 곳에서 온 식품을 많이 먹고 있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우리나라 1인당 식품 수입량은 468kg으로 2001년보다 14% 증가했고요. 매일 1.28kg씩 외국산을 먹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푸드 마일리지가 커지고 있다는 건, 단순히 신선도가 떨어지는 식품을 많이 섭취하고 있다, 이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올수록 식품을 운반하는 선박과 비행기의 탄소 배출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고, 지역경제에도 당연히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전한 먹을거리도 확보하고, 또 농민들의 어려움도 함께 나눌 수 있을까요.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씨는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라는 책에서, 영국의 환경 보존마을 레이크 디스트릭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우유 한 병, 계란 한 팩, 사과 주스 한 병, 종이에 목록을 적은 뒤 잘 접어 돌 뒤에 묻었다. 다음 날 아침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부엌 창문 앞턱에 하얀우유가 담긴 병 하나, 종이 팩에 담긴 달걀 6개, 그리고 사과 주스 한 병이 놓여 있다. 영국에는 요즘 지역별로 로컬 푸드 운동이 한창인데, 이는 멀리서 식료품을 운송해 오지 말고, 근거리 지역에서 생산하는 식료품을 먹자는 캠페인이다. 운송비가 사라지니 가격은 저렴해질 것이고, 인근 농가가 활성화 되니 도시를 떠났던 농부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사회 경제적인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로컬 푸드 운동을 쉽게 말하자면요, 가까운 데에서 생산한 식품을 사먹자입니다. 뭐 이렇게 하면 식품의 영양과 신선도를 높이고, 운송 중에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을 줄여서 지구 환경도 보호할 수 있지요. 또 학교 급식은 물론 지역의 공공기관에 공급하는 식품에 대해서도, 그 지방의 농산물을 공급하는 형태가 확산되면서, 지역 경제도 활성화 하고 있는데요. 50km 이내에서 생산되는 채소와 과일을 계란 우유를 싣고 배달을 다니는 식료품 배달차량을 우리도 쉽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요? 그런데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요,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에 로컬 푸드 직매장이 문을 열었고요. 서울의 중심으로 대 도시에서는 도심의 공터와 빌딩 옥상, 동네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는 도시 농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하니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7월 10일 방송>
2. 오늘 본문은 진리의 힘에 관해서(31-38절), 악마의 자식들의 특징에 대해서 (39-47절)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는 구절은 많은 대학들이 건학정신(建學)으로 삼을 만큼 즐겨 사용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무엇엔가 묶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새김해 보는 말씀입니다. 참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구절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입니다. 진리란 무엇입니까? 문자 그대로는 참 이치, 참된 도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진리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만이 참이며 바른 도리라고 말입니다(요 1:17, 5:33, 14:6).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서 헤매고 있는지를 생각할 때, 너무도 빨리 그리고 쉽게 진리에 눈을 떴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리와 자유, 혹은 자유와 진리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과제여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가치의 혼란(迷妄)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래야 하고, 둘째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그래야 하는 때문입니다. 우리가 최고의 가치로 여길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할 것인데, 바울 사도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전 2:2)는 깨우침이 그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서 있게 하거나 넘어지게 하는 것은, 바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느냐 라고 하겠습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 어떤 일에 몰입하듯 성실하게 살아간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허망한 일이냐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더욱 더 분명하게 알아지고 믿어지기를 기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참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3. 태풍 <산바>가 남긴 자국들이 너무 큰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아픔을 잘 이겨내도록 격려와 기도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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