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332호 (2013. 3. 27. 수요일).
시편 시 79:5-8.
찬송 34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시각적인 효과에 가장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래선지 세상엔 갈수록 볼 것이 넘쳐나서, 때로는 소음보다 더 심각한 공해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눈은 그다지 성능이 좋은 편은 못 됩니다. 오죽하면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인간의 눈이 오징어의 눈만 못하다.” 이렇게 표현했을 정도인데요. 다양한 색채를 감식할 수는 있지만, 시야를 확보하는 데 있어서는 영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과 눈 사이가 좁아서 왼쪽 오른 쪽 20도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생기니, 오징어보다 시야가 훨씬 좁지요. 게다가 시력도 계속 떨어져서 멀리 보지도 못합니다. 나이가 들면 노안(老眼)이 와서, 그나마 가까운 것도 잘 안 보이지요. 그렇다고 멀리 있는 게 더 잘 보이게 되는 것도 아니니, 이래저래 인간의 눈은 참 불안전하고, 태생적으로도 이런 한계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눈은 정면에 가까이 있는 것만 보는 것에 가장 익숙하다. 그러나 세상에 볼 것은 정면만이 아니라, 오른 쪽 왼쪽 뒤에도 있고요, 가까이 뿐 아니라 저 멀리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많은 것들을 보기 위해서 떠날 필요는 없습니다. 보는 법을 배우면 되거든요. 미국의 사진작가 크리스 오르웨그는 말합니다. 매일 눈을 뜨면 시작하는 일이지만, 보는 행위는 바로 기적이라고. 매일 이렇게 기적이 벌어지는 데도, 눈을 반쯤만 뜬 채 일생을 보내는 사람도 많다고. 보고는 있지만 정말 완전히 보는 것은 아니라고. 그럼 어떻게 하면 완전히 볼 수 있는 기적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가 쓴 책 [소올 포토]에서 몇 가지 방법을 안내 받아 봅니다. “보는 법 배우기는 내 딸들의 경우처럼, 세상을 재정의할 새로운 언어의 사용을 요구한다. 신선한 말은 신선한 시각을 안내한다. 새로운 말을 찾아내는 데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라.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분야의 책을 읽어라.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보기를 즐기는 것이 가장 확실히 보는 것이다. 모든 금잔화, 모든 산꼭대기, 모든 구름, 모든 색, 모든 농가, 그리고 모든 얼굴을 만끽하라.” 순진하고 신선하고 열정적인 눈으로, 지금 보는 모든 것들을 만끽하기. 그렇게 보는 법을 배워가기. 올 한해 지켜보고 싶네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1월 3일 방송>
2. 흔히 유대인과 같은 이들을 꼴통이라는 말로 일축할 때가 있습니다. 늙은 부모세대가 꼴통으로 보일 때가 있고, 앞뒤가 막힌 듯한 샌님 같은 선생님이 그리 보입니다. 그리고 저 같은 푼수 목사들도 그렇게 분류되곤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꼴통들에게도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가령 오늘 본문에서 평행선을 그으며 대화하는 유대인과 날 때부터 소경이었다가 눈을 뜬 사람과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매우 단순한 생각에 붙들려 있습니다. 기적을 행사할 만큼 능력이라는 점에서는 출중하지만, 안식일을 범하는 등 율법을 소홀히 하는 듯한 예수님에게서, 죄인 냄새가 난다고 마음을 굳힌 유대인들이 그렇고, 세상에서 전무후무한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라고 믿어버린 소경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고정관념을 깨트려서 귀를 열게 할 아무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말을 서로 주고받아서 대화처럼 보이지만, 오고 가는 말이 부딪히기만 할 뿐 일방적입니다.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자기 생각에만 붙들려 있는 사람은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어 합니다. 그래서 큰 소리를 치고 끝내는 막말을 내뱉는 수순을 밟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해서 웃었습니다만, 하나님이 귀를 두 개 만드신 것을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얘기는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러 보내고, 처음 듣는 얘기는 한 귀로 듣고 또 다른 한 귀로 또 들어서 생각 상자에 넣어두라고 말입니다. 평행선 대화는 당사자들은 답답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제대로 들리겠지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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