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583(2013. 12. 3. 화요일).

시편 시 139:21-24.

찬송 13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앰뷸런스의 모습이 보이기도 전에, 도로의 차량들이 마치 모세의 홍해처럼 갈라지며 길을 내 주는 모습들, 요즘은 보기 힘들 건 같습니다. 심지어 나도 바쁜데 방해가 된다고 하는 야박한 사람도 있지요. 이런 모습을 도로에서 목격하는 날이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랍비 조시 텔로스켄이 쓴 책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내 친구 랍비 잘만 샤프트 살로미는 구급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구급차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을 제안한다. 마찬가지로 소방차의 소리가 우리의 평온을 깨트릴 때마다, 우리는 소방차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나 집을 구할 수 있게 빨리 현장에 도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모든 소방대원도 무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친구의 제안은 심오하다. 부적절한 짜증을 내고 싶은 바로 그 순간, 기도를 드리는데 익숙해짐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사람 더 애정 어린 사람이 될 수 있다.” 좋은 사람이란 짜증을 내고 싶을 때, 나보다 더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 고통 받는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겠지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910일 방송>

 

2. 오늘 본문은 세 가지 짧은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일화는 소위 성전 정화 사건을(12-13), 다음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의 마찰 일화를(14-17), 마지막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화(18-22)입니다. 세 일화 가운데서 하나만 뽑아서 오늘의 묵상자료를 삼으려 합니다. 그것은 두 번째의 일화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성전을 찾는 이들 가운데는 몸과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전에 딱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위로와 평안 그리고 소망을 얻을 곳이 성전(혹은 교회)인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성전이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모른 체하지 않고 모두 다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참 놀랍고도 희한한 일로 생각하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마음을, 마태복음서 기자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 더 그들의 심기를 흔들어 놓은 것은, 철부지 어린 아이들이 소리치는 말이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나서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저희가 하는 말을 듣느뇨?”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사실 앞에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마음 속 밑바닥으로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하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천형(天刑)같은 절망을 살고 있는 소경들이나, 당시의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다리를 저는 사람을 고쳐내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분노를 느끼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입술을 통해 들리는 꿈같은 소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에 분노하다니 말입니다. 어느 심리학자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만을 들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그들도 예외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은 예수는 이단이고, 마귀의 힘을 빌어 사술을 행하는 자이다.”말일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극명하게 갈리는 두 부류의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순 세력의 사주를 받았다고 진실을 호도하는, 우리 시대 대제사장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저만 일까? 달라도 너무 다른 귀를 가진 사람들 속을 우리는 지나가야만 합니다. 또 한참을 지나야 옳은 귀를 가진 이가 밝혀지겠지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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