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582호(2013. 12. 2. 월요일).
시편 시 139:16-20.
찬송 13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 법이오. 그건 한 인간의 부분으로 남아, 그 사람 인격의 일부가 되는 것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일부분 역시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닌다오. 아울러 내 일부 또한 영원히 당신 것이오.” 영국 작가 로자문드 필처가 쓴 소설 [조개 줍는 아이들]에서 리처드가 페넬로프에게 했던 말입니다. 젊은 날에 만난 리처드와 페넬로프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전쟁이 있었고, 이별을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별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이는 까닭은, 서로에게 서로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리처드는 진정으로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좋은 것이 인격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페넬로프는 할머니가 되어 지난 인생을 돌아볼 적에, 그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압니다. 사랑받았던 기억이, 함께 만든 따뜻한 추억이, 자신의 인격을 만들었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사실은 단 한 번도 이별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요. 최근에 출판된 고 박완서 작가의 책 [노란 집]에는, 작가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손자를 둔 할머니가 된 후에도, 그녀가 자신의 할아버지 생각을 많이 간절히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앞서 리처드가 했던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나를 애지중지 하셨을까? 그 생각만 하면 자신이 소중해 진다. 그 분이 사랑한 나의 좋은 점이, 내 안에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그건 삶이 비루해지려는 고비마다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됐다. 사람이 한 세상 살고 나서 남길 수 있는 게 사랑밖에 없다면, 자꾸자꾸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11월 14일 방송>
2. 어제가 대림절 첫째 주일이었습니다. 교회력 상으로 보면 어제부터 2014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들 신앙의 출발점은 주님을 기다리는 일에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채우기 위해서 교회력을 따르도록 한 것은 매우 지혜로운 판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초대교회 이래로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일이라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기 위해서 주일을 지키게 되었고, 중요한 그리스도 사건들, 부활절과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난 오순절, 그리고 주현절과 사순절 등을 묵상하며, 주님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려고 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세속주의를 따라 성공과 출세를 목적으로 하는 한 방편으로써 신앙생활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앙이 자신들의 삶의 원리가 되도록, 주님의 생애와 말씀을 따르려는 순종의 길을 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2014년이 마태의 해를 알리기라도 하듯, 성서일과는 마태복음을 묵상하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이 길을 걸어가셨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귀 새끼를 타셨고, 철부지 인생들의 입술은 호산나를 열호(熱呼)했던 것입니다. “우리를 구해 주십시오.”라는 뜻을 가진 호산나는, 예루살렘 소시민들의 간절한 외침일 뿐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의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해 그들이 외친 호산나는,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만 여겼을지 모릅니다. 항구적이고 영원한 구원을 절실히 원했는가는 아무래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외면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지금 소위 신앙인이라는 사람들이 외치는 호산나 역시 그 옛날 예루살렘 소시민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무거운 멍에들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램에서 외치는 소리로 말입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호산나를 외치고 있는지 찬찬히 돌아볼 시간입니다.
3. 언제부터인지 주일이 행복한 날이 되었습니다. 예배 순서 하나하나에 온 정신을 몰입하다보니 그리 된 것 같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일이, 기도를 드리는 일이,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읽는 일이, 말씀을 선포하는 일이, 축복을 선포하는 일이, 깊은 감동과 기쁨 가운데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아들 비유가 가르치는 교훈. / 마 21:23-31. (0) | 2019.05.27 |
---|---|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가? / 마 21:12-22. (0) | 2019.05.27 |
고난을 즐길 이유. / 벧전 4:7-19. (0) | 2019.05.27 |
믿으면 구원받는다. / 벧전 3:13-4:6. (0) | 2019.05.27 |
고용주에 대한 권면. / 벧전 2:11-25. (0) | 2019.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