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881(2020. 3. 19. 목요일).

시편 72:6-7.

찬송 30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몇 년 만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써지는 만년필에 놀라고 나니, 한편으로는 자신의 일이나 능력을 다시금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나의 일을, 글쓰기를, 저만큼 잘해낼 수 있을까 싶은 거였지요. 7년째 접어들던 직장을 생활을 그만 둘 때, 다른 이들은 그동안 모은 돈으로 그토록 소원이라 든 세계 여행이라도 떠나느냐고 했습니다. 부럽다고들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글이 쓰고 싶어 뒤늦게 문예창작 학과에 입학한 거였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온통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중입니다. 막연히 쓰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소설을 쓸지 시를 쓸지 자신이 그런 글에 재능이나 있을지 아직 모르겠는데 입학하고 보니 이미 엄청난 재능을 인정받거나 발휘하고 있는 동기생은 왜 그렇게 많은지, 주눅만 늘어가는 기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19세기 독일 화가인 칼 슈피츠백의 그림 <가난한 시인>에 나오는 시인은, 낡고 좁은 다락방에 누워 있습니다. 물이 새는 걸 막으려는지 천장에는 검정 우산이 펼쳐져 있고, 빨래 줄에는 수건이 걸려 있습니다. 책들은 바닥에 흩어져 있고, 시인은 젊은 시인도 아닌 노인인데다, 추운지 옷도 잔뜩 겨 입고 담요도 끌어올리고, 머리에는 슐라프 뮤채라는 잘 때 쓰는 모자까지 갖춰 썼습니다. 그야말로 빈한하고 궁색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림은 오히려 시인의 낭만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독일의 한 고급 호텔에는 그림 속 모습을 그대로 재연한, 칼 슈피츠백의 가난한 시인 룸이 있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남 보기에는 궁핍하고 빈천해도, 자신에게 앞의 만년필이나 동기생과 같은 뛰어난 능력을 없을 지라도, 그래도 어떤 글이든 쓰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니, 그림 속 시인인 노인도, 20대의 자신도 한편으론 행복한 게 아닐까? 그리고 어쨌든 열심히 하면, 무슨 길이든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라고 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319일 방송>b.

 

2. “사도의 권리와 의무(1-15)”을 읽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평생토록 따라다녔던 멍에가 있었는데, 바로 누구의 사도냐는 것입니다. 다른 12제자들과는 달리 생전에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남다르게 자신을 소개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는이라는 말을 마치 관용구처럼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자기변호를 낯선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자신이 전도하고 가르친 제자들에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마음 아팠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첫 마디 중에 내가 사도가 아니란 말입니까?”라고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나 제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틈새에서 명예를 얻기도 하고 돈을 벌기도 하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이와 같은 사도직 논쟁은 그렇게 함으로 재미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사도직 논쟁을 통해서 바울 사도는 당시의 세태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사람들이 생계의 수단을 넘어 치부의 수단으로 하나님의 일꾼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암시가 그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맞는 말임을 역설합니다. 포도밭을 가꾸는 농부나 양을 치는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통해서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 역시 그 일이 전업이라고 한다면, 그 복음 전하는 일로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자급 목회를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요즘 선교지에서는 전문직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가령 태권도 사범으로 혹은 의료인으로 급여를 확보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입니다. 저도 목회 초기에는 교직을 하면서 지역교회 목사노릇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럴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길을 포기하고 전업 목사가 되었습니다. 주객이 전도되는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자급 목회에 대한 꿈을 여전히 꾸고 있습니다. 복음을 팔아 치부하는 삯군이 되지 않으려고, 최소한의 생활비만을 받는 가난한 목회자들에게 존경을 보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