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993(2020. 7. 9. 목요일).

시편 90:8-10.

찬송 52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갑자기 집을 방문한다고 하면, 당황하지 않을 사람 그리 많지 않겠지요. 어지럽혀져 있는 집안이 마치 치부(恥部)를 들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을 겁니다. 냉장고는 어떨까요? 그 중에서도 냉동실은 미리미리 사다 넣어서 꽉 차 있지만, 정작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다 기억하기가 힘들지요. 나중에 해 먹자 넣어두고는,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휴가 다녀온 사이 전기 코드가 고장 나서 냉장고에 있던 식재료들이 모두 녹아서 한참을 청소해야 했다는 어떤 분 얘기를 들었는데요. 그 안에 들어있는 오래 된 식재료들을 보면서, 많이 반성하게 됐다고 합니다. [미안하지만 다음 생애에 계속됩니다]의 저자 주경스님은, 자신은 늘 냉장고 안을 버릴 궁리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탬플스테이에 온 사람들에게 누군가의 살림살이 실력을 알고 싶으면, 냉장고의 냉동고를 열어보라고 귀띔해 준다고 하는데요. 갖가지 색상의 봉지들에 담긴 알 수 없는 음식들이 가득 쌓여 있으면 하위, 보기 좋게 잘 정돈되어 있으면 중간, 텅 비어 있으면 상위로 보면 된다고요. 결국 아무 자각 없이 그저 있으니까 물건을 간직하는 게 아니라, 물건을 어떤 방법으로 갖고 있을지 깨닫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아깝다는 말로 물건을 봉인하지 말라. 물건은 사용할 때 가장 소중히 대하는 것이다.” 라는 것처럼, 식재료 역시 제 때 맛있게 먹어줄 때 가장 소중히 대하는 거겠지요. 주경 스님의 이 말은 단지 냉장고에만 적용되는 건 아닐 것 같습니다. “단단히 동여매진 까만 비닐봉지가 겹겹이 쌓여있는 냉동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번뇌로 가득한 마음이 떠오른다.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조차 까마득한 번뇌들은 우리 마음을 단단히 얼린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6718일 방송>

 

2. “율법과 유다인(17-29)”을 읽었습니다. 유대인의 특징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중에 가장 유별난 것은 유대인은 스스로를 율법의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율법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도덕이나 윤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도덕이나 윤리는 그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향기가 나고 윤기가 나는 삶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만에 하나 이런 도덕과 윤리가 생활에 적용되지 못하고 겉치레로 삼을 때, 그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한없는 자괴감과 민폐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하물며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이런 율법을 입으로는 떠들면서도 실생활에서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이 보다 더 실망스럽고 꼴사나운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모습이 유대인들의 삶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문제를 하나하나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도둑질을 말라고 설교하면서 자신은 도둑질을 일삼고 있고, 남에게는 간음하지 말라면서 자신은 간음을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우상을 미워한다고 하면서 그 우상을 훔쳐서 자신이 보호하고 섬기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야말로 어불성설입니다. 가장 문젯거리로 특히 이방인들에게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할례를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례는 생후 8일에 모든 유대 남자 아이들이 받는 예식인데 요즘의 포경수술과 같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린 아이의 양기에서 피가 흐를 때, 너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선언을 합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유대인 사이에 맺는 피의 약속(血盟)이었습니다. 이로써 그 유대 아이는 평생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몸의 흔적을 지니고 자랑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할례의 사람이란 그 흔적에 걸맞은 삶이 뒤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할례의 사람답지 못하게 살고 있는 현실이라면, 이 할례는 자랑이 아니라 도리어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마치 오늘의 기독교인들이 무당을 찾아가서 자신의 미래를 알려달라고 하듯 말입니다. 할례와 그 후속 수단인 율법은 그 흔적을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지킬 때만 제 값을 가지는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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