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991(2020. 7. 7. 화요일).

시편 90:1-4.

찬송 34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전통시장에 자주 가시나요? 최근 전통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리모델링과 캠페인 장터 한 마당 같은 행사와 상품권 만들기 또는 특징적인 메뉴처럼 좋은 아이디어들도 많이 나오는데요. 오늘 나눌 이야기는 전통시장 안에 있는 수요 마을 작은 도서관 이야기입니다. 도서관장인 이재권씨는 20여 년간 생선가게를 운영해 왔는데요. 처음 시장 안에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반대 의견도 많았다고 합니다. 가뜩이나 대형 마트로 시장 입지가 약해져서 열심히 장사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시장에서 책을 들고 다니는 건 보기에 안 좋다는 걱정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순천에 있는 기적의 도서관처럼, 작은 도서관들을 방문해 계획을 세우고, 또 조급하지 않게 꾸준히 설득하자, 결국 반대하던 상인들도 생각을 바꾸어 페인트칠도 함께 하고 책도 기증 하며 도왔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들 가운데 인문학 강연을 기획할 땐 많이들 올까 고민도 했지만, 예상외로 반응도 좋고 장사하느라 각박해 보였던 상인들도, 장사를 통해 사람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해 왔음을 서로 깨게 됐다고 하는데요. 독서 동아리 반딧불이, 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부모와 아이가 함께 시장에 오는가 하면, 파란 모자를 쓰고 시장을 누비는 어린이 시장 탐험대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단지 물건을 팔고 사는 장소를 넘어 교감하고 꿈을 키우는 따뜻한 공간이 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통 시장이 세대를 이어주는 연장선으로써의 역할도 하고, 세상 흐름과 호흡하는 공간도 될 것 같은데요. 그 나라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엘가고, 현재를 보려면 시장에 가고,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엘 가라고 하지요. 그곳에서 두부가게를 운영하는 분의 말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비창주기를 더해주는 것 같은데요. 전해드릴게요.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이 되라는 수초작주(遂初酌酒)의 마음으로 장사를 하기 시작하면, 두부 한 모에 손님의 행복을 정성껏 담아 팔게 됩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678일 방송>

 

2. “믿음을 통한 구원(16-17)”인간의 타락상(18-25)”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일반적으로 구원이란 구원받기를 갈망하는 사람 자신의 노력으로 얻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요즘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는 용어 선한 영향력역시 이런 범주에서 무관하다 할 수 없고, 저 유명한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힘들게 걷고 있는 사람들의 고행도 이런 범주에서 무관하다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무보수로 땀 흘리는 분들이나, 평생을 좌판을 벌여놓고 한 푼 두 푼 모은 돈 수 천만 원을 선뜻 불우 아동을 위해 쾌척한 어느 노파의 모습도 이런 범주에서 무관하다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엄청난 고행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인도나 중동이나 그리스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우리나라 최초의 성직자 김대건 신부님이 공부했다는 마카오의 성 안토니오 성당과 성 바오르 성당에서, 수만리 길을 돌아 돌아 죽음을 앞당기는 사제의 길을 걸어간 그 흔적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었습니다.

   어찌하여 복음을 부끄러워지지 않는다 했을까요? 아마도 아무 노력이나 수고 없이 공짜로 얻는 구원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반증일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의 전 인생을 결산하는 구원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고 좋을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안함을 너머서 부끄러움이 생겼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뭔가 수고의 땀이나 희생의 피를 흘린 대가로 얻는 것이라면 부끄럽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사도는 공짜로 얻는 구원을 가져오는 복음을 부끄럽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유다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이 복음이 미치는 영향력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에 이를 수 있으니 부끄러울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구원을 정의합니다. 구원이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아닌 삶, 그래서 구원받지 못한 삶은 부끄러운 삶이라는 말입니다. 동시에 이런 엄청난 사건인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져오는 것이, 다름 아닌 인간의 수고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었음을 수용하는 믿음이야말로 절대로 부끄러울 수 없는 위대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일은 인간이 깨우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총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인 구원행동을 받아들이는 믿음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목숨을 건 행동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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