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186호(2021. 1. 18. 월요일).
시편 시 121:1-4.
찬송 28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B.C. 1,400년경에 그려진 그림으로 추정되는 고대 이집트 시대의 벽화로 <향연>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태배내부아몽>이란 귀족의 분묘에서 나온 것인데요. 이 벽화에 등장하는 여인들을 보면 얼굴은 옆, 눈은 정면, 어깨와 가슴은 다 에 있어서 폭이 넓은 쪽을 우선으로 그리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이집트 벽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얼굴은 분명 옆얼굴인데, 몸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아는 대로 그려진 그림이죠. 그렇다면 이집트 사람들은 왜 보이는 대로가 아닌 아는 대로 그려서, 어색한 사람의 모습을 탄생시켰을까요? 이집트 사람들은 기억에 의존해서 표현했고요. 더더군다나 인체에 관심이 많아서, 인체를 보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코가 오똑해 보이는 옆얼굴을 선택했고, 아름다운 눈동자는 정면 모습을 그린 겁니다. 느낀 대로 기억하는 대로 아는 대로를 더 중요시 여겼던 이집트 사람들의 시각. 중요한 것과 과감히 생략해도 되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4년 1월 26일 방송>
2. “호숫가에 모여든 군중(7-12절)”과 “열 두 사도(13-19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앞으로는 정치집회가 아닌 종교집회에는 대중 동원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때문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갈릴리 호수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갈릴리를 바다로, 오늘 본문처럼 호수로 표현합니다. 갈릴리 호수는 길이가 75km 넓이가 40km로 바다로 불리기에는 조금 큰 호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는 곳이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떼로 모여들곤 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 식민치하의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애국 시민들도 있었을 것이며,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질병을 고쳐보려는 목적에서, 또는 배고픔을 개선할 어떤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서, 그 밖에 진리를 찾아서 왔을 것입니다. 제가 참석했던 가장 많은 수의 종교 집회는 단연 1973년 5월 30일-6월 3일에 있었던 빌리 그래함 여의도 집회였습니다. 공식적인 발표로 연인원 120만 명이 모였는데, 대학생이던 저도 고향교회가 집합해 있는 텐트를 찾아서 교우들을 만났던 기억이 아른 합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17개 교단이 연합으로 기획한 초대형 집회로 지역별로 묵을 수 있도록 텐트를 쳤는데 찾아가는데 많은 시간을 써야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때 찬양을 했던 조영남씨가 빌리 그래함 목사에게 감동을 주었던지 목사가 되기 위해서 미국 신학교로 초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대형 전도 집회에는 의례히 건강한 사람보다는 육체든 영혼이든 병든 사람들이 몰려들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을 찾았던 사람들 역시 그랬을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갈릴리 주변 마을 사람들 뿐 아니라, 남쪽 지방인 유대와 예루살렘 그리고 두로와 시돈이라는 이방 나라 사람들까지 몰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실 때는 작은 거룻배를 빌려 호수에 배를 띄우고 말씀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수많은 병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고쳐주셨는데, 그 중에 귀신들린 사람들 곧 미친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당신은 하나님의아들이십니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소리를 할 때마다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메시야 비밀 사상>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병을 고치거나 기적을 행할 때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존재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게 되고 이를 고백하게 되자, 주님은 이런 주장을 하지 못하게 막으셨던 것입니다. 훗날 학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십자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있기 전에는 반드시 감추어야 할 일이라고 말입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일신 사상을 가진 유대교인들이 그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 수는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른바 예수 사건,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알고 있고 믿고 있는 한 영육 간에 강건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을 찾아서 신앙의 어머니가 된 교회(3세기 교부 터툴리아누스의 명언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을 수 없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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