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216(2021. 2. 17. 수요일).

시편 시 135:4-6.

찬송 48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눈송이처럼 가벼운 꽃도 누군가에는 얼마나 무거운지, 가벼운 눈이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듯, 가벼운 꽃도 지게를 진 일꾼 에게는 무릎을 위협하는 무거운 바윗돌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무게로 남자는 아이들도 키우고 공부 시키고 했겠지요.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 <꽃 나르는 사람들>, 박목월 시인의 <가정>이라는 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아니 현관에는으로 시작되는 시지요. 아홉 명의 강아지 같은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묘사한 시입니다. “내 신발은 19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작한/ 귀염 둥아 귀염 둥아 우리 막내 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그렇게 박목월 시인도 눈과 얼음의 길을 걸으면서, 일곱 여덟 명의 아이들을 키우던, 그 시대 가장들을 시로 그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졸업장도 가벼운 종이 한 장에 불과하지요. 눈송이만큼이나 꽃잎 무게만큼이나 가볍습니다. 하지만 그 종이 한 장의 무게가 정작 아버지나 어머니에게는, 그림 속 남자의 속 꽃 지게나 시속 남자의 19문 반 신발만큼이나, 무겁고 고달픈 눈과 얼음의 무게였지 않을까? 졸업식이 많아서 어디서나 꽃다발이 눈에 띄는 때,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박목월 시인의 문득 그 꽃과 졸업장의 무게를 돌아보게 합니다<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216일 방송>b.

 

2.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9-14)”을 읽었습니다. 마침 오늘이 사순절의 첫날인 성회 수요일인데요. 오늘 저녁 기도회는 잿 가루를 올리브기름을 섞어 이마에 십자가를 긋는 오랜 전통을 시연합니다. 우리 인간이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을 가집니다. 전통적으로 성찬이 있는 주일 예배와 성 목요일 성례전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독교의 모임은 기도회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에 초점을 두는 모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기도의 본질에 대해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신앙생활이란 기도생활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도가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흉내 내기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기도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기도는 주변에 있는 사람의 평가나 인정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점이며, 반대로 오직 하나님만이 들어주셔야 할 내용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철저하게 기도자와 하나님과의 관계 짓기로, 누구에게도 밝히거나 이해를 구할 필요조차 없는 원칙이라고 말입니다. 마치 사랑하는 두 남녀가 누구의 간섭이나 관심 없이 두 사람 사이에서만 기뻐하고 행복을 누릴 은밀한 관계 맺기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의 본질적인 내용과는 달리,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은 쏙 빠진 채로 엉뚱하게도 기도자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제3자가 기도의 대상자처럼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오늘 주님께서 지적하시는 내용은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는 시종(始終) 옆에 있는 제3자를 의식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알고 있다면, 그런 헛소리는 지껄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 부정직한 사람이라는 것, 음탕한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 이를 부정하는 말을 하나님께 기도라는 방법으로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진심을 다해서 진실한 자세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얼굴을 들지도 못한 채로 제 가슴을 치면서, 자신을 많은 죄를 지은 죄인으로 고백하며 오직 자비만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향해서 두려운 마음으로 다가섰다는 말입니다. 세리야말로 기도의 본질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며, 기도다운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 두 사람의 기도하는 자세를 평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올바른 기도의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세리였다고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날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바리새파 사람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세리처럼 기도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엉터리들이 교회를 채우고 있는 모습 말입니다.

 

3. 오늘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것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성회수요일로 사순절의 첫날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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