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17호(2021. 5. 29. 토요일).
시편 시 7:6-7.
찬송 17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든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정원을 만드는 사람들을 말하는데요. 아직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직종이지요. 그 가든 디자이너를 아내로 둔 어떤 사람이 얼마 전에 영국에서 열린 첼시플라워 쇼우 라는 세계 정원대회에 다녀와서는 감동을 크게 받았는지, 현대인들은 각박한 콘크리트 숲에 지쳐서 정원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더군요. 정원의 종류로는 시골 정원, 영어로 표현하자면 컨트리 가든, 도시 정원, 시티 가든, 옥상 정원 루프 가든을 대표로해서 그 특성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건물들을 보면 옥상에 작은 정원을 꾸미는 것도 볼 수가 있지요. 그 곳에서 점심을 먹거나 또 차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요. 풀과 나무 또 채소 등과 같은 식물로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그곳의 설계 관리하면서 주변과 조화롭게 배열하는 예술이지만, 그 식물을 기르는 원리나 기술적인 면에서 보면 또 과학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원은 예술과 또 과학이 만나는 자리에서 탄생하는 거구요. 우리나라의 정원은 삼국 시대부터 중국에서 유행하던 도가 사상의 성선설에 입각한 정원 양식이 그대로 들어 왔는데요. 경주에 남아 있는 안압지가 그 대표적인 곳입니다. 이 안압지는 경관이 우수한 자연을 이용해서 연못과 돌 풀과 나무로 소박하게 꾸미는 건데요. 신선들이 노닐던 곳 같은 그런 느낌을 줍니다. 고려시대에는 중국 송나라 기법을 모방해서, 정원에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호화롭고 또 사치스럽게 발달합니다. 고려 후기부터 사대부 집안에서 정원을 꾸며 즐기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삼국시대의 중국식 정원이 고유한 한국적인 정원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특히 조선은 중기 이후에는 집에서 안채의 뒤에 후원이 생기는데요. 그 많은 후원 중에서도 자연 그대로 바위나 시냇물 또 지형조건과 서로 어울린 깊은 숲속에 자리 잡은 창덕궁의 후원, 비원이 우리의 정원입니다. 비원과 같은 연못과 또 시냇물이 흐르는 정원은 가끔, 가끔 들려서 즐기고 아프트와 같이 단절된 공간인 집에서 작은 정원을 만들 수 있겠지요. 좋아하는 화분 몇 개만으로도 작은 정원을 만들고 이름을 붙어 지어주면 어떨까요? 유토피아 가든, 내가 살던 고향은 이런 정겨운 이름 하나로 내 마음의 정원을 좀 만들어 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6월 10일 방송>
2. “개인적인 부탁(9-18절)”과 “작별인사(19-22절)”을 읽었습니다.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는 정해진 대사만 얘기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배우의 개성이나 성품 그리고 말투나 습관 등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개인적”이라는 말은 한 사람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는 개인적인 주제로, 몇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상길로 되돌아간 데마를 먼저 얘기합니다. 그는 사도가 로마 감옥에 있을 때 신실하게 도와주었던 인물로(골 4:14), 사도는 그를 동역자라고 부를 정도로 신뢰하였습니다(몬 1:28). 그는 데살로니가의 시민으로 추측하며, 결국 그는 옛 생활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둘째는 그레스겐스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루가는 사도와 함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레스겐스나 디도는 사도의 동역자로써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떠난 것이며, 두기고는 사도가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동행한 인물로(행 20:4), 아시아에 보내는 여러 통의 편지(에베소, 골로새, 디모데전서)를 전달하였고(엡 6:21, 골 4:7, 딤후 4:12), 바울사도는 그를 그레데로 보내어 디도를 동반하여 니고볼리로 오게 한 인물이었습니다(딛 3:12). 셋째는 마가에 대한 언급인데, 한때 마가는 선교지를 이탈 제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은 바울은 2차 전도여행에서는 그를 빼버리자 그 일로 동역자 바나바와 사이가 나빠진 일화가 있었지만, 훗날 바울과 함께 옥에도 갇히고(골 4:10), 베드로와 바울 선교에 많은 조력을 하였던 인물입니다(벧전 5:13, 딤후 4:11).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드르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기를 바랄 정도로 선교의 훼방꾼으로 소개하며, 재판정에 갔을 때는 믿음의 형제라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버리고 나간 일화를 얘기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들의 연약한 믿음을 동정하는 마음을 엿보게 합니다. 그러면서 영육 간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바울 같은 위대한 인물도 이렇게 허약한 마음을 내비칠 수 있음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도우시지 않으면 무너질 수 밖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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