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16호(2021. 5. 28. 금요일).
시편 시 7:3-5.
찬송 38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차를 즐기는 분들은 차가 우리 일상의 여백이고 또 휴식이라고도 합니다. 술과는 달리 사람을 취하게 하지 않아서 맑은 정신을 유지시켜주는 특성이 있어서 불가 수도승들의 음료이기도 한대요. 이것은 이슬람 수도승들이 수행을 할 때 커피를 마셨다는 것과는 차이가 느껴지는데요. 차의 역사는 일상적이면서도 신비롭게 시작됩니다. 기록에 의하면 중국 황제 신롱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에 잠깐 조는 사이에, 시녀가 마실 물을 끓이고 있었는데, 이 때 바람결에 나뭇잎이 물속에 떨어졌고, 그 맛을 본 황제가 처음 차라는 것을 발견한 겁니다. 차의 문화는 이렇게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에서 시작되는데요. 중국과 일본 심지어 영국과 같은 서양에서도 차 문화가 화려하지만 우리에게도 차는 아주 각별한 의미가 있지요. 불가의 초의 스님과 원효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이 수행의 한 방편으로 차를 마셨고, 또 서산 대사는 차에 대해서 이런 시도 남겼습니다. “스님 몇 명 있어 내 암자 앞에 집 지었구나. 새벽종에 함께 일어나고, 저녁 북에 함께 잠든다. 산골, 물, 달과 함께 길어 차 다리니, 푸른 연기 나고 날마다 무슨 일 의논하는가? 염불과 참선일세.” 밤중에 우물을 길어 올리는데, 달이 거기에 비치는 모습, 또 그 물을 끓여 마시는 차 한 잔, 차를 끓여 마시는 큰 사람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는데요. 이 시는 우리의 차와 그 차를 즐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가 정찬주의 [다인 기행]에 실려 있습니다. 차의 대가인 초의 선사 외에 우리 역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정약용, 또 송시열 등 50여명의 삶 속에 배어 있는 차향기를 찾아다닌 작가는, 그들에게 차 한 잔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서 그 책을 썼다고 하네요. 작가는 우리들 삶이 힘들고 고달픈 것이라고 할지라도, 차에 대한 시 한편을 읽으면 어느 순간 가슴이 촉촉 해지고 따뜻해지기에, 그 마음으로 차와 시를 찾아 다녔고, 또 거친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의 몫을 다 하고 간, 옛 사람의 차 한 잔, 마음 한 잔을 우리들에게 전해 줘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끝없이 펼쳐 진 차 밭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이맘때쯤이면 순천 다보원의 풍경은 정말 화면으로만 봐도 그 향기와 평화가 느껴지는데요. 꽃구경과는 또 다른 느낌이지요. 6월은 6월은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이 많은 달입니다. 그래서 차 한 잔의 위로가 더욱 고마운 달이기도 하고요. 차 한 잔 하시면서 노래의 날개 함께 해 주시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6월 8일 방송>
2. “마지막 명령(4:1-8)”을 읽었습니다. 저는 화이자 백신 접종 대상자인데, 아직도 대기상태에 있습니다. 아내는 제가 가진 기저질환 때문에 동의서를 제출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맨 먼저 동의서를 제출했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는 두렵습니다. 그래서 요즘 오래 전에 써 두었던 <유서>를 다시 손질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 될 유서는 한 인간의 가장 절실한 바램이 담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가 디모데와 또 다른 제자들 혹은 성도들을 향해서 남기는 유서와 같은 성격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엄숙히 명령한다.”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도의 유서의 바탕에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유서는 몇 가지로 분류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 둘째는 기회가 어떠하든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가르치고 책망하고 훈계하고 격려하라는 것. 셋째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거짓 진리에 눈과 귀를 돌리겠지만, 복음 전하는 사명을 완수하라는 것입니다.
마침 <워 워 솔저스>라는 미국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 병사가 딸을 낳고 전쟁터로 떠나려다 홀로 예배당에 들려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처럼 적군 병사도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적군의 기도는 무시해 주시고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라고 합니다. 어쩌면 예배당에서 우리들이 하는 기도 역시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습니다. 그냥 말다툼 정도라거나, 주먹다짐하는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상대의 피를 흘리게 하고 목숨까지 빼앗으려는 사투를 벌이는 전쟁터에서, 상대를 죽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난처한 일들이 우리들 삶에도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럴 때 우리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깊고 넓은 뜻을 가지고 결정하신다고 말입니다. 사도는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이 가져다 준 엄청난 능력을 깨우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역시 스스로 “희생의 제물”이 될 각오와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그가 깨달은 진리였습니다.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만이 의의 면류관이 허락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생과 과부 유부녀와 구설수에 올랐던 여인을 통해서 섭리하시는 하나님. / 룻 1:1-8. (1) | 2021.05.31 |
---|---|
사도의 연약함을 도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들도. / 딤후 4:9-22. (0) | 2021.05.29 |
하나님의 은총아래 사는 크리스천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딤후 3:1-17. (0) | 2021.05.27 |
자신만의 매력을 가진 사람으로. / 딤후 2:14-26. (0) | 2021.05.26 |
복음의 핵심 : 예수는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 / 딤후 1:15-2:13. (0) | 2021.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