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703호(2022. 6. 19. 성령강림절 후 둘째 주일).
시편 시 80:12-15.
찬송 25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긍정의 힘]의 저자인 조엘 오스틴 목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생활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말을 바꿔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는 습관을 들이면 기분이 달라질 뿐 아니라, 삶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인데요. 실패보다는 성공을, 불가능보다는 가능을, 두려움 보다는 자신감이 앞서는 말이야말로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면서 긍정적이고 큰 역할을 하겠지요. 자, 새로운 한 주를 여는 오늘 아침입니다. 삶을 바꾸는 긍정의 힘을 믿으면서, “노!” 라는 부정적인 말 보다는, “예스!”라는 긍정적인 말로 활기차게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KBS FM 1, 새아침의 클래식, 2007년 6월 18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둘째 주일로 눅 8:26-39을 본문으로 “미친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갈릴리 호수 건너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렀을 때, 군대 귀신에 미친 젊은이 하나를 만났는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무덤가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를 온전한 사람으로 살려주시려고, 근방에서 방목하는 돼지 떼에게 군대귀신을 보내어 돼지들을 대신 미치게 해서 물에 빠져 죽게 한 일화를 배경으로 합니다.
미친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26-31절).
거라사에서 주님께서 만난 청년 뿐 아니라, 과학 문명이 발달한 21세기 현대 사회에서도 미친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우크라이나가 불과 넉 달이 채 안 된 지금, 전쟁의 포화로 온 나라가 잿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수 백 수천 년을 돌보고 가꾼 아름다운 고향을 잃은 전쟁 난민들, 특히 고아들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만든 것은, 미친 한 사람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더 많은 사람들이 미친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고상한 체 시치미를 떼고 산다는 현실입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오해하고서 무작정 위로 올라가려고 남을 밀치고는 사람들입니다. 1999년 우리나라에 소개된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은, 죽을힘을 다해 위로 오르기만 한 애벌레는 허망을 깨닫는 것에 반해, 나비가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는 삶이야말로 참된 행복임을 깨닫자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미친 삶과 제정신으로 사는 삶이 놓여 있습니다(32-38절).
제가 사는 마을에는 지붕 개량사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는 벽난로 공사와 태양광 공사로 큰 파도가 지나갔습니다. 10년 동안 아주 조용했는데 투기바람이 불고 있다 합니다. 마지막 거처이길 바라며 상추와 고추 오이와 부추를 수확하며 산새와 노루 꿩들과 함께 15년째 살고 있는데, 걱정이 많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한 정신을 잃은 젊은이의 생명을 지켜주시려고, 수 백 마리의 돼지들의 생명을 맞바꾸신 일화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미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제정신으로 살 것인가? 미친 삶이란 벌거벗은 것을 모르는 부끄러운 삶이며, 수백 마리의 돼지 떼를 아름다운 산야에 풀어놓는 장삿속 시류(時流)를 말합니다. 제정신의 삶이란 죽은 자의 거처 무덤을 떠나, 사랑하는 이웃들과 어울려 웃고 울며 정을 나누는 평범한 일상이라 하겠습니다. 선택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나누라 하십니다(38-39절).
신학대학을 지원한 동기를 묻는 질문에 여러 유형의 답변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여기저기 응시했지만 잘 되지 않아서 하나님의 뜻인가 해서 지원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한국 교회의 현주소가 있기도 합니다. 목사의 길이 최고의 선택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미친 삶에서 제정신을 차린 사람에게 “집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것을 (이웃에게)알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몇 년 전 통계로는 매년 수천 명의 목사후보자가 배출된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연변 지역의 다방에는 중국에 선교사로 온 한국의 목사들이 수백 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신학생이나 목사가 더 이상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립시다. “네 집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것을 알리라.”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전도방식에서 가족과 이웃을 향한 인격적인 전도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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