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03호(2022. 9. 27. 화요일).
시편 시 102:4-7.
찬송 8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걷던 그 길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찾아가 보는 마음은 어떤 걸까요? 아픔은 희미해지고 그리움도 엷어졌지만, 그 그리움이 희미한 그림자로 남아서 이토록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가 짐작해 봅니다. 김노현 작사 작곡의 <고대>에서는, 서로 굳게 손잡고 맹세한 임에게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잔잔하게 전해져 오지요. 고음이 많은 청아한 선율이 곡의 품위를 자아낸다는 평입니다.
“아름다운 희망을 안고, 너와 함께 거닐던 길을 오늘은 다시 찾으니, 바람만 지나가누나. 황혼의 언덕 위에 오색구름 꿈꾸던 시절 황홀한 내 가슴, 오늘 더욱 그리워지누나. 진주 같은 내 마음, 어둠 속에서 빛이 되리라. 맹세하던 푸른 저 언덕 아름답던 시절, 서로 굳게 손잡고 맹세한 너는, 지금 어디 작은 빛 되었나? 오라, 어둠을 헤매는 이 가슴속에, 내 맘에 그리는 그대의 사랑이, 찬란한 밝은 태양이 되어, 동녘 하늘 위에 빛이 떠 오누나. 나를 반겨 웃는 듯.”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성악가 이인범 선생의 청탁을 받고 만든 쓴 곡이라고 합니다. 여유와 안정감이 곡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작곡가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애타는 귀소성을 소박하면서도 가식 없는 멜로디에 담기 위해 애썼다고 합니다. 특히 작곡가가 직접 쓴 시 때문에, 시상과 악상이 적절하게 맞아떨어져서 듣는 사람에게 더욱 더 큰 감동을 전해 준다는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 임을 그리는 우아하고 맑은 선율이 빛나는 곡이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9월 28일 방송>
2. “욥의 세 번째 대답 2(3-17절)”과 “욥의 기도(21-27절)”을 읽었습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제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욥은 과연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동방의 의인인가 하고 말입니다. 해 아래 의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욥은 자기 자신을 의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욥은 우리들 인간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빅톨 위고가 미리엘 주교를 통해서 이런 하나님을 소개해 주었고, 마틴 루터 킹 2를 통해서 소개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통해서 소개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죄인을 죄인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의인으로 바라보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또 다시 도둑질로 하룻밤을 편히 묵게 해 준 주교를 배신한 장발장이 분명하지만, 그의 형편과 처지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장발장을 감싸 안아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려주고 싶은 주교였다는 것입니다. 어제 묵상자료에서 죄인을 이해하시는 하나님을 얘기하고 싶었는데, 운만 띠고 말았는데요. 하나님께서 이해하시는 인간은, 결과로 나타난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배경과 그 배경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당사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너그러움이 하나님에게 해당되는 이해라고 말입니다. 오해는 잘못 알고 있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곡해는 처음부터 비뚤어진 인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해는 현실에 나타난 팩트 만이 아니라, 그 풀기 힘든 원인과 배경을 모두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인식입니다. 그래서 이해하는 마음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무리 살인자라 법정형을 받은 아들을 향해, “너는 착한 아이란다.” “네가 잘못된 것은 내 잘못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단다.”며 안타까워하는 그의 어머니의 말 속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욥은 귀를 기우려 들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변명이든 항변이든 아니면 변론이나 억지소리가 됐든, 하나님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차분하게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보고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재난으로 세상 끝 모서리에 외롭게 서 있을지라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시고 모든 허물을 감싸 주시며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 세계에서 심판을 받았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위선자라고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의 항변에 귀를 기우려주시는 분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딱 두 가지를 들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먹을 거두어주시라고 말입니다(20-23절). 하나님께서 죄악에 대해서 진노의 주먹을 날리시는 것 같은데, 도대체 자신에게 죄악이 있다한들 그게 얼마나 되느냐고 항변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얼굴을 제발 돌리지 마시라고 말입니다(24-27절). 그러니까 자신을 원수처럼 대하지 말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들이 너무 한심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낙엽 같기도 하고 마른 검불 같기도 한 자신을 힘들게 하시며, 젊은 날에 저질렀던 잘못들을 들추시는 것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하실 일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욥의 당당한 신앙에 대해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앞장서 계시다 믿는 우리들보다도 더 큰 확신을 가진 대단한 신앙을 욥에게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은 누구의 말을 들으실까? / 욥 16:16-22. (0) | 2022.09.29 |
---|---|
욥이 철썩 같이 믿고 있던 하나님. / 욥 14:1-22. (1) | 2022.09.28 |
이해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친구 사이의 간극. / 욥 12:1-6. (1) | 2022.09.26 |
욥의 당당함은 확고된 신앙 때문. / 욥 10:1-9, 16-22. (0) | 2022.09.24 |
우리의 중보자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뿐. / 욥 9:1-15, 32-35. (1) | 2022.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