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29.

시편 시 105:7-10.

찬송 508, 53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막스 프리슈라는 한 스위스의 작가는, 사랑이라는 것을 이렇게 3마디로 요약했었습니다. “사랑은 자극을 주는 것, 모험을 주는 것, 흥미진진한 것”. 뭐 크게 새로울 것 없는 요약이지요. 하지만 그 뒤의 덧붙인 다른 말이 새롭고도 아픈데요. “사랑하는 사람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있으면 이 세상 최고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것. 이 말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한 주일 사랑하면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KBS FM 1, FM가정음악, 20071022일 방송>

 

2. 성령강림절 후 스무째 주일의 복음서 말씀인 눅 18:9-14을 본문으로, “우리는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가끔 뚱딴지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가 있습니다. “행복한 삶이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입니다. 그럴 때 오늘의 본문이 매우 적절한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는 사람은 결코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하십니다(11-12).

어느 시대나 잘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시대에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삶이 실패한 것 같고, 패배자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른바 성공한 인생이라고 자부하는 한 사람을 등장시켰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사람 앞이건 하나님 앞이건 자랑거리가 많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기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욕심 없이 살았고, 부정직하지 않았으며, 음탕하게도 살지 않았다고 확신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한 주간 동안에 두 번씩이나 금식기도를 하고, 십일조도 철저하게 드렸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나무랄 데가 하나 없는 완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예나 지금이나 쉽게 찾을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자랑할 거리가 없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13).

두 번째 등장시킨 인물은 의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인 모습밖에는 내 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겨우 한 마디 모기 소리만 하게 하나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 사람을 주님은 세리였다고 하셨습니다. 세리라는 사람은 예수님 당시 모든 사람들이 다 알만큼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의 앞잡이였고, 부정축재자였으며, 자기 민족을 배신한 인물로 지탄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보통의 인간으로서나, 신앙인으로서도 한없이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서 뜨겁게 눈물을 흘릴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쉽게 찾아 볼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잘 살고 잘못 살고는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9-10, 14).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우리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잘못 설정됐다는 것입니다. 우선 누가 우리의 삶을 평가해야 적절한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60년 만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자랑거리들이 많은 친구들이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재능이 출중한 이도, 열심히 교회를 봉사하는 이도, 자녀를 잘 키운 이도 있었지만, 잘못 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삶을 평가하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 뿐 아니라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어찌된 일인지,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그리고 직장도 생활도 기독교 신앙과 떨어질 수 없는 환경이 주어졌다며 하나님의 은총을 꼽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평가를 전전긍긍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 그것은 다름 아닌 죄인의식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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