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08.

시편 시 102:23-25.

찬송 23, 338, 34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입니다.” 전설적인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이 남긴 말입니다. 하루하루 걱정거리, 고민거리가 끊이지 않고, 정말 내 삶은 왜 이렇게 힘들까 생각 들 때도 많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면 또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요.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너그럽게 삶을 바라볼 수 있을 테고요. 그러면 또 오늘 하루도 비극이 아닌 기분 좋은 희극으로 마무리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KBS FM 1, 새아침의 클래식, 2007102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열일곱째 주일로 누가복음 17:1-6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겨자씨 한 알의 믿음으로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성경 말씀은 일기를 쓰듯 매일의 삶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일화들을 적절하게 편집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1-4절은 죄의 유혹과 용서를 주제로, 5-6절은 믿음의 힘을 주제로 말씀하신 일화들입니다.

 

우리들 인간의 삶에서 죄의 유혹은 매순간 발생하며 그래서 서로 용서해야 살 수 있습니다(1-2).

살아있는 교회와 죽은 교회의 차이는 죄의 주제가 되풀이 되고 있느냐로 구별됩니다. 죄의 문제는 우리들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 어디를 가든 죄의 문제가 쉼없이 튀어나오지만, 남의 얘기 수준이라는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죄는 모든 사람이 짊어지고 가는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치명적인 독화살과 같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남의 죄라도 들추어냄으로 자기 자신의 죄를 감추려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1977년 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어느 날 밤 행인을 차로 친 남녀 고등학생들이 사체를 유기함으로 사건이 종결되는가 했지만, 1년 후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고 적힌 의문의 편지가 날아오면서 관련 인물들이 하나둘씩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는 줄거리입니다. 물론 이 영화는 인간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강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적어도 숨을 쉬고 살기 위해서 그리하라고 말입니다. 용서는 깨끗이 지워버린다는 뜻입니다.

 

크리스천으로써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만 형제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3-5).

제자들은 주님께 믿음을 더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제자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일까요? 놀랍게도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믿음이란 형제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기를 원해서 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형제가 죄를 짓고 회개하거든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8:22에서는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 한번의 용서도 어렵고 힘든 일인데, 어떻게 490번이나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믿음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주님이 말씀하신 믿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먹보다 더 검은 내 죄악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주신 주님의 공로를 믿는 믿음에서 출발한 믿음이었습니다. 나를 검고 붉은 죄악에서 눈보다 더 희게 씻어주신 주님의 공로를 믿을 때만 가능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은 주님을 우리 삶에 모셔들이는 일이었습니다(6).

성경을 읽을 때 흥미로운 점 하나는 우리 주님께서 믿음을 크고 작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4:31에는 물위로 걸어오신 주님을 보고, 자신도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구한 베드로가 풍랑앞에서 물 속으로 빠져들어갈 때 어찌하여 믿음이 적으냐?”고 책망하셨는데, 8:10에는 자신의 부하가 죽어갈 때 주님께서 네 집으로 가자고 하셨을 때, 말씀만 하시면 되겠다는 백부장에게 이런 믿음을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보지 못했다 칭찬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에 관한한 얼마나 많은가 하는 양의 문제도 아니고, 얼마나 특별한가 하는가도 아니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앞세우는 믿음이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되실 것을 믿습니다. 바로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시는 때문입니다.

 

3. 오늘은 주성농인교회(우슬초목사 시무)에서 설교를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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