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01호.
시편 시 101:6-8.
찬송 54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들의 기막힌 요리법의 핵심은 적당함입니다. 계측할 수 없는 적당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적당함이 요리의 비법이지요. “소금은 얼마나 넣을까요?” 여쭈면, 그저 조금, 적당히 이렇게 답하십니다. 적당할 때 만나고, 적당한 때 떠나고 적당한 때 쉬고, 내가 있어야 할 적당한 곳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참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살면서 자주 느끼곤 합니다. 적당한 선을 찾을 수 있는 적당히의 미학, 생활 속에서 더 잘 녹여내고 싶어집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9월 29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열여섯째 주일로 구약 아모스 6:1-7을 본문으로 “현상이 아니라 방향성이 문제다.”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시대를 꿰뚫어보는 혜안을 가진 스승들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행복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의 출세와 성공만을 저울질 하는 사람들은 먼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릅니다.
위기는 부와 번영의 시대에 싹트기 쉽습니다(1-3절).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를 황금시대라고 부르는데, 아모스가 선지자로 활동하던 여로보함 2세의 재위기간을 제2의 황금시대라고 부르곤 합니다. 전쟁의 위협은 물러가고, 문화 사회 경제에 부흥이 일어나던 시대였습니다. 무역과 상업이 발전하고 사람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작용도 따랐는데, 사람들은 술에 취했고, 부도덕하고 타락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시대상을 예리한 정신으로 분석하고 비판해야 할 종교지도자들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공과 출세가 목표가 되고, 감성에 젖은 노래를 찬송이라 부르는 초점잃은 사람들로 가득 채우고 있을 뿐, 어디에서도 예언자적인 설교를 들을 수가 없는 우리 시대와 너무도 닮았습니다. 위기가 찾아오고 있는 그 때에 남왕국 유다 드고아 출신 양치기 아모스가 혜성처럼 나타나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5:24).”고 말입니다. 정의가 실종된 시대를 보고도 벙어리된 지도자는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현상에 머무르는 것에서 방향성으로 신앙의 키를 돌려야 합니다(4-6절).
어느 시대나 세상의 물결은 현상에 목표를 두게 마련입니다. 가시적인 목표를 향해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루거나 얻은 판검사 그리고 장군과 교수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바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수단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판검사가 되라고 가르쳐야 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장군이 되고, 세상을 밝히는 진리를 전하는 교수가 되라고 가르치지 못한 것입니다. 목사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고, 세상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앞장서는 삶을 살며 외치는 목사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방향성을 추구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만들자고 헛된 꿈을 부추기며, 부자가 되고 오래 사는 것이 성공한 모습이고 하나님의 축복이라 가르치는 지도자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게 개탄할 일입니다.
때가 이르면 역사의 죄인들은 가장 먼저 잡혀갈 것이라 예언합니다(7절).
역사를 공부하는 민족은 망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원인부터 결과까지를 기억하도록 교육받기 때문입니다. 국가나 민족 뿐 아니라 개인과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상을 위해서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조상을 몰라보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물론, 남의 것을 가로채는 염치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를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꾸준히 가르쳐야 할 사람들은 사회와 교회 지도자들입니다. 두 번 다시 나라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말과 얼 그리고 이름까지 빼앗기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비극적인 일에 앞장선 배신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뼛속 깊이 기억해야 할 것이며,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먼저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들은 자자손손에게 부끄러운 선조가 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금 현상이 아니라 방향성에 주목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걸음은 어디로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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