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787호.
시편 시 97:5-7.
찬송 35, 205, 44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파스칼은 이렇게 주장했지요.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한 방에 들어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흙탕물을 맑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만히 놔두는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혼자 조용히 휴식하면서 사색하는 시간, 그리고 가고 싶은 나라의 음악을 들어보는 것, 또는 추억 깃든 여행지의 사진을 감상해 보는 것, 오늘 일과표에 들어 있어도 좋겠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년 9월 9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열 넷째주일로 복음서의 말씀 눅 15:1-7을 본문으로 “잃은 양은 누구인가?” 라는 제목으로 설 교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주목해야 합니다. <읽은 양의 비유는 가장 많이 오해하는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잃은 양이 누구인지 주목합시다.
세상이 다 아는 소문난 죄인들을 잃은 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입니다(1-3절).
이른바 예수님의 <잃은 양 비유>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처세를 비난할 때 행하신 즉흥적인 이야기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저 사람(예수님)은 죄인을 환영하고 그들과 음식까지 나누고 있다.”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는 죄인들이란, 세리와 그에 준하는 소문난 죄인들을 통칭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후로는 유대 지도자들이 말했던 사람들이 잃은 양으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세리가 죄인으로 분류된 것은 자기 민족의 재산을 강탈해 가는 로마 통치자들의 앞잡이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은 로마 지배자의 비호아래 축재에도 열을 올렸던 것입니다. 그밖에 소문난 죄인들이란 창녀를 비롯해서 혼혈인 사마리아 사람 그 밖에 문둥병자 등 난치병 환자들도 해당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잃은 양이란, 이런 외적 흠결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잃은 양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4-5절).
미국의 대통령은 반드시 기독교인일 필요는 없지만, 기독교인이 아니면 당선되기 어렵다고 합니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할 때 성경위에 손을 얹는 전통이 있습니다. 모순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는 지 여부가 입방아에 오른다고 합니다. 어느 대통령이 주일에 아픈 것을 핑계로 집에서 쉬었는데, 교회를 다녀온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목사님의 설교의 주제는 뭐였소?” 그러자 “회개하라.”고 하자, “누구보고 한 소리야?”라고 묻자, “아마 당신일걸.” 대답했다 합니다. 우리들 역시 유대 지도자들처럼 겉으로 드러난 죄인들을 잃은 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잘못된 인식인데, 자신이 죄인임을 감추는 방어수단으로 남을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회개는 하나님을 향해서 돌아서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희망도 궁극적인 구원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회개하는 한 마리 양이 회개하지 않는 99마리 양보다 소중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6-7절).
우리 주님은 회개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라는 성경 언어 메타노이아는 “방향을 바꾸다.”는 뜻입니다. 죄에 머무르고 있거나 죄로 향하던 삶의 방향을 하나님을 향해 바꾸는 행동을 회개라고 말합니다. 루터교회 예배는 <죄의 고백과 용서>라는 순서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선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며, 그때부터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과 교제하시는 게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들과 교제하신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사람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들리게 되고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회개하는 잃은 양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회개할 때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고, 비로소 가장 값진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3. 오늘은 주성 농인교회(묵상식구 우슬초목사 시무)에서 설교를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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