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87호(2023. 7. 8. 토요일).
시편 시 1:4-6.
찬송 15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원로시인 황금찬은 다작 시인으로 꼽힙니다. 젊은 시절 강릉에서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시 동인 <청포도>를 결성해 활동했습니다만, 등단은 꽤 늦은 나이인 서른여섯 에 했습니다. 하지만 그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하듯이, 이후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시를 쓰는 일에 몰입했지요. 같은 문인이자 절친한 벗으로 지냈던 박목월, 조병화, 고상이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말입니다. 황금찬 시인의 시는 평화롭고 온화합니다. 생각이나 느낌이 갈등을 빚거나 대립하지 않고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는 포용력이 있지요 하지만 드물게 예외적인 작품들도 있습니다. 이제 들으실 <돌아오지 않는 마음>처럼 말입니다.
“이웃이 봄볕같이 마음의 담을 헐었다. 꽃잎에 실을 매어 지연같이 날렸더니, 구름위에 솟은 마을 성 머리에 걸려, 돌이 되고 말았다. 10년, 다시 100년에 돌아오지 못하는 꽃잎의 전설. 문을 열어 놓고 한나절 새 한 마리 날아오지 않는 빈들. 돌아오지 않는 마음자리에 미움의 나무에 열매가 연다.”
1918년생인 황금찬 시인은, 오는 8월이면 만으로 아흔 구순(九旬)이 됩니다. 스스로도 건강의 비결을 화를 내지 않는 것이라 말할 정도로, 시인은 온화한 성품을 지녔습니다. 그런 성품은 그의 시를 통해 나타나지요. 하지만 그런 시인에게도 고난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74년 맏딸을 잃었던 때였다고 합니다. 넓은 포용력을 가진 그였지만 그 시기를 견디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품은 적이 없던 세상 원망이 한꺼번에 몰려 왔지요. 시인의 절절한 비애가 시를 통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7월 9일 방송>
2. “가장 큰 재난(20-24절)”과 “시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25-28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분별력(discernment) 이라는 말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부모 노릇을 하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미국의 교육학자 바스카 글리어의 교육방법을 원용(援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녀들에게 분별력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오고 그 실제 용례를 A4 용지 한 장에 적어오라는 과제를 줍니다. 물론 1만원에서 5만원까지의 상금이 있다고 약속을 합니다. 아마도 최선의 답을 내놓기 위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책상 앞으로 갈 것입니다. 우리 국어사전에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바른 생각을 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삶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해야 할 말과 해선 안 될 말을 구별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건강은 물론 주변인을 위해서 피워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 등등 말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디아크리시스(διακρισις)라고 사용하는데, 대표적인 말씀이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3)입니다.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이 분별력을 최대한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인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까르페디엠을 누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주님은 유대전쟁을 예상하시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 날이 왔을 때 말씀처럼 진행되었습니다. 유대인 최후의 항쟁 터였던 맛사다에 가보면, 로마 군인들의 병영지가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었던 터를 보여줍니다. 심리적인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때를 위해서 주님은 산으로 도망가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을 빠져나가고, 시골에 있는 사람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징벌의 날이며, 임신한 여인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이 불행하다고, 하나님의 분노가 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요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 전쟁으로 세상의 모든 이목이 우리 한국에 쏠리고 있다합니다. 어쩌다가 우리나라가 재래식 그리고 신형 무기를 만드는 방산강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가 화약고가 된 셈입니다. 불안 불안하던 분쟁지역들이 일촉즉발의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습니다. 민주진영과 공산진영간의 싸움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동 등의 정치적 이권다툼도 한 몫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전쟁터로 바뀔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미국의 보호아래 누려오던 평화(Pax Americana)가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더 이상 유대인들만의 문제이거나 우크라이나와 대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주님은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십니다. 성 안에 있는 사람은 성 밖으로, 시골 사람들은 성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유명한 주석가 메튜 헨리는 종래에 우리가 전쟁이 일어날 때 원칙처럼 해 왔던 일들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암시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더 이상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다는 말입니다. 사실 현대 과학문명은 인류를 멸망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을 시인해야 하겠습니다. 파국의 날에 우리가 취할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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