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273호(2024. 1. 10. 수요일).
시편 시 38: 19-22.
찬송 34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언어는 늘 그 시대에 맞게 조금씩 바뀌어 왔습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읽고 쓰고 말하기에 가장 좋도록 학자들은 언어의 바른 형태를 유지하러 애써 왔지요. 그런데 그 어느 때 보다 지금 우리의 말은 고난의 시기를 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한 나라에서 조차, 서로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의 언어는 위기이지요. 그 안에서 거칠어지지 않는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고, 한글이 지닌 언어의 질감을 잘 살린 단어를 골라내 글을 완성하는 사람의 노력은 더욱 돋보입니다. 아름다운 우리 가곡의 작시자 중 하나인 시인 서 공식처럼 말입니다.
“물소리 깊어져서 잔설을 벗겨내고/ 소솔이 바람 불어 가슴을 헤쳐대면/ 얼레지 새 순을 틔워/ 설 뫼는 잠을 깬다/ 한걸음 들어서서 마음을 기우릴 때/등불 켠 금강초롱 천산의 길라잡이/ 뜬 구름 따라 흐르는 까닭 없는 나를 본다/ 능선을 타고 넘는 어스름 길어지면/ 아득한 임을 따라 찾을 길 없이 그리워라/ 노을 빛 비추인 설 뫼는/ 파도 되어 출렁이네”
농과 담이 잘 어우러진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시와 곡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깊고 담백합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들으면 글이 품고 있는 뜻은 더 융숭합니다. 조금은 예스러운 단어를 골라서 마치 하나의 옷을 만들듯이 정갈하게 배열해낸 시인의 재주가 돋보이지요. 글을 읽고 곡을 듣는 것으로, 시인이 담고자 했던 그 넉넉한 분위기가 선뜻 다가오는 듯합니다. 서 공식 시 오 숙자 곡 <나 또한 설뫼 되어>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년 1월 9일 방송>
2. “무화과 두 바구니(1-8절)”을 읽었습니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긴을 비롯하여 유다의 고관과 은장이 대장장이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난 얼마 후의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앞에 무화과 두 바구니가 덩그렇게 놓여 있었고,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묻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그의 대답은 “좋은 무화과는 무척 좋은데, 나쁜 무화과는 먹을 수 없도록 썩어버렸습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은 좋은 무화과들처럼 내가 잘 돌보아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헐지 않고 세우고, 뽑지 않고 심겠다 시며, 그들에게 나를 알아보는 마음을 주어, 이런 일을 하는 이가 야훼임을 알게 하겠다 하십니다. 이 백성이 진심으로 돌아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십니다. 그러나 유다 왕 시드기야와 고관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이나 이집트로 망명한 자들은 썩어 먹을 수 없는 무화과처럼 만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환상이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좋은 무화과 대접을 받게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썩은 무화과로 만들어버리겠다 말씀하십니다. 이 환상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살아보겠다고 이집트와 같은 강대국에 빌붙거나, 온갖 술수를 써서 포로로 잡혀가지 않으려고 기를 쓰던 권력자들은 쓸모없는 생을 마감할 것이나, 오히려 포로로 끌려간 자들은 그 고통의 시절을 겪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게 되어 귀환자들의 대열에 끼일 것이라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이라는 골짜기를 걸어갈 때는 의문투성이 일 때가 많습니다.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행여 빗나간 행보는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훨씬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처럼 확신도 없고, 모든 것이 희미하고 불투명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런 별 볼일 없는 인생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곤 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링컨의 말처럼, 하나님은 너무도 평범해서 내 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들을 가장 많이 사랑하신다고 말입니다. 그 말엔 이유가 분명한 듯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희망을 찾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힘을 주고 찾아 읽어야 할 구절은 이것입니다. “나는 그들을 이 좋은 무화과처럼 잘 돌보아 주리라. 잘 보살펴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중략> 나를 알아보는 마음을 주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나 야훼인줄 알게 하겠다.”고 말입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닫은 사람이라면, 그는 가장 위대한 믿음의 용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누구도 무시 못 할 그런 용사가.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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