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299호(2024. 2. 5. 월요일).
시편 시 44:7-8.
찬송 17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의 시에 여러 명의 작곡가가 곡을 붙인 경우를 우리가 가곡 작품 안에서 종종 만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감성이라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좋은 시란 작곡가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공감하게 만들기 때문이겠지요. 반면에 하나의 멜로디에 다른 노랫말을 가진 곡들도 이따금씩 존재하곤 합니다. 거기에는 나름의 사정들이 숨겨져 잇는데요. 여러 노랫말을 가진 지게 된 노래들은 글을 쓴 작가들이 월북했던 것이 문제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남북의 정치적인 상황이 훨씬 좋지 않았고, 곡의 가사를 쓴 작가가 월북했다는 것은 금지곡이 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엄마 일 가는 길엔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하나씩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내려오시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뒤 산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이미 알고 계셨던 분도 계셨겠습니다만, 이 곡의 멜로디는 동요로 알려진 <가을밤>과 같습니다. 원래 윤 복진의 시 <기러기>에 곡을 붙여 작곡가 박 태준이 발표한 곡이었습니다만, 윤 복진이 월북한 뒤로 금지곡이 되면서, 이 태진의 글 <가을 밤>으로 노랫말만 바뀌었습니다. 이후 포크 가수였던 이 연실이 아동문학가 이 원수가 1930년 잡지에 [신소설]에 발표한 동시 <찔레꽃>을 개사해, 또 하나의 새로운 노랫말을 붙입니다. 이 명주가 부른 찔레꽃은 찔레꽃 뒤에 마치 후렴구처럼 동요 <가을밤>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친숙한 이 곡에 이렇게 많은 사연이 있음이 조금은 새롭게 느껴집니다. 이 연실 작사 박 태준 곡 <찔레꽃>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년 2월 4일 방송>
2. “목마른 사람은 내게로 오라(37-39절)”, “그리스도에 관한 구구한 생각(40-44절)”, 그리고 “유다 지도자들의 논란(45-52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70년대에 많이 사용하던 말 “지구촌”이라는 표현이 실감되는 요즘입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제수용품 비용이 얼마나 올랐는지 등에 신경을 쓰던 때와는 달리, 요즘은 가까운 일본에서 지진 소식이 들리거나, 예멘의 후티 반군이 아덴만에서 유조선에 로켓 포탄을 쏘았다는 기사만 떠도 신경이 쓰입니다. 당장 자동차 주유비가 영향을 받는 때문입니다. 이제는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수만 가지의 문제들로 인해서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초막절은 유대 민족의 해방절인 유월절과 맥추절기인 오순절과 함께 1년의 추수를 마무리 하고 감사하는 수장절로, 3대 명절 중 가장 마지막 명절입니다. 유대인 성인(13세 이상)은 이 3대 명절을 지키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초막절의 시작인 칠월 15일이 되면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에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 동안 선조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던 것을 체험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절기였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유대인들이 초막절을 지키는 것을 목격했다는 한 신학대 교수는, 그들 유대인들은 초막절 기간 중에 누룩 없는 빵을 먹고 최소한의 물을 마시며 광야 생활의 고충을 경험하면서 어른들에 의해 자녀들에게 삶과 신앙의 의미를 교육하는 매우 의미 있는 절기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명절의 마지막 날에, 목마른 사람들에 관한 말씀을 하셨으니까, 목마름을 체험한 사람들에게는 허투루 들리지 않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목마름을 토로하곤 합니다. 배고픔과 질병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시작으로 사랑의 목마름과 인정을 받고 권위를 행사할 목마름 등, 어쩌면 세상 모든 문제들로부터 참된 자유와 해방을 누리고 싶은 목마름이 모두 해당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이런 목마름을 해결할 샘솟는 생수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누릴 것인데,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삶을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하면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한때 박태선 장로가 생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물병에 물을 준비해서 예배에 참석하면, 박태선이 “생수를 받으라!” 하고 팔을 휘저으면 준비한 물이 생수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속임수에 넘어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임재하시고 일하셔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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