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01(2024. 2. 7. 수요일).

시편 시 44:12-14.

찬송 48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홍 난파의 <봉선화>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선 가곡이라는 형태의 음악이 본격적으로 등장 을 했습니다. 이후 발표된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 가곡은 탄탄히 기반을 다지고 발전하게 되지요. 그 중 1920년대를 전후해 출생한 작곡가들은, 그동안 가곡이 지녔던 특징인 낭만적이고 한탄하듯 구슬픈 색채에서 벗어나, 우리 가곡을 서서히 개성의 시기로 이끌고 나갑니다. 그런 음악 미학을 추구했던 작곡가 가운데 바로 나 운영이 있습니다.

    “산새는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심한 산골 영 넘어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15년 정부는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 길

    작곡가 나 운영은 열여덟에 <가려나>를 통해서 이미 음악적인 감수성을 인정받았습니다만, 그에게 본격적으로 작곡가로써의 명성을 안겨 준 것은 소월의 시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나 운영은 광복을 전후로 왜색을 띤 가곡들이 범람했던 시기에, 우리 민족 고유의 예술 가곡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신념으로 우리 가곡들을 완성했습니다. 덕분에 작곡가 나 운영에게 소월의 의미는 남달랐습니다. 여럿이 곡을 붙였습니다만, 작곡가는 유독 소월의 작품에 우리 민족과 스스로의 감성이 더 잘 아우러진다 말하곤 했지요. 김 소월 시 나 운영 곡 <>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27일 방송>

 

2. “나는 세상의 빛이다(12-20)”을 읽었습니다. 빛과 어두움, 사랑과 미움, 아름다움과 추함, 그리고 영과 육 등 이런 나눔 들을 두고 우리는 이분법 또는 이원론의 예시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복음서는 초대교회에 만연했던 헬라 철학인 영지주의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서에 소개된 자료들은 동시대의 삶의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원론적 사고나 이해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해야 하겠습니다. 우선 이원론이란 일반 철학의 기본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두움에서 빛으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추함에서 아름다움으로, 육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자리를 바꾸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그런 시도가 가장 빠르고 확실한 구원이고, 문제 해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과는 달리 일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성경의 등장인물들인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빛과 어두움이나 사랑과 미움이 온전하게 구별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빛이 흐릿하거나 부족할 때 생기는 것이 어두움이고, 사랑이 식어버리고 모자랄 때 미움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둠을 몰아내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려고 힘써도 불가능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육적인 것을 증오하고 혐오한 나머지 거세(去勢)함으로 성욕을 극복하려고 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격인 오리게네스가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던 빌미가 되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영적인 삶에 더욱 충실할 뿐 아니라, 육적인 연약함을 충실히 짊어져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 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고 하셨을 때, 빛의 생명력과 투명성 그리고 역동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도덕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신학자인 쥘 앙리 푸앵카레(Jules Henri Poincaré, 1854~1912)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갈수록 더욱 투명한 가운데 모든 인간의 죄악이 비춰진다 과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도덕적인 접근법으로는 헛된 수고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인간의 모든 허물을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려는 일련의 의지나 노력도 헛된 것임을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어주시지 않는다면 쓸모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에 눈을 뜬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만 매달렸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빛을 비춰주시고, 사랑과 아름다움을 품게 해 주시라고 말입니다. 일흔 두 살에 저의 할머니가 별세하셨는데, 어느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천사의 얼굴로 숨을 거두셨을 때, 할머니는 저의 찬송소리를 듣고 계셨던 것입니다. 평생소원이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셨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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