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03(2024. 2. 9. 금요일).

시편 시 44:18-21.

찬송 34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몇 해 전 한 신문사에서 작곡가와 성악가 100명을 대상으로, 최고의 우리 가곡과 작곡가를 고르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가곡 부문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추천받고 최고의 작곡가로 손꼽힌 영광을 동시에 누린 이가 작곡가 김 동진이었지요. 한국 최고의 다양성을 지킨 작곡가, 낭만 가곡의 대표자, 예술 가곡으로 현대와의 다리를 놓아준 작곡가, 그의 이름 앞에는 이렇듯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작품들만큼이나 많은 수식어가 붙기도 합니다. 목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유년기부터 쉽게 서양 음악을 접하고, 성악과 바이올린을 공부했던 그는 성악 쪽에 기량이 돋보이는 가곡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작곡가 김 동진에게 예술가로써의 생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창작의 고통과 평생을 싸우며 작품을 만들고, 또 그에 따른 동료나 대중의 평판에 원치 않게 시달려야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작곡가 김 동진이 처음 영화음악 작업을 시작했을 때도, 그는 동료들에게 타락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예술가로써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는 것은 매우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오해를 낳기도 하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영화를 위해 곡을 쓰는 것 역시 김 동진에게는 그저 또 하나의 즐거운 작업일 뿐이었지요. 소월의 시에 작곡한 이 곡 <못 잊어><초혼> <저 구름 흘러가는 곳>과 더불어 영화 주제곡을 위해 쓴 작품이었습니다. 작곡가 하 대용이 곡을 붙여 완성한 가곡 <못 잊어>와 더불어서 하나의 시에 다양한 작곡가의 곡이 고르게 사랑받고 있는 것은 조금은 이례적인 경우이기도 하지요. 김 소월 시 김 동진 곡 <못 잊어>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29일 방송>

 

2.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31-38)”악마의 자식(39-47)”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유독 우리나라의 명문 대학인 SKY는 학훈/學訓으로 오늘의 성경말씀의 핵심인 진리와 자유(veritas vos liberabit) 라고 정한 것이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철학의 본산인 헬라에서는 진리를 로고스(λογος)라고 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천 년이 지나가도록 여전히 로고스를 찾아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성경에 등장하신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진리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그리고 주님은 진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셨는데,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31-32)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른바 SKY가 내세우는 진리란 세속적인 개념으로,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하늘 저편 어디에 존재하는 로고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써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역사적 예수님이 바로 진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이신 예수님은 당신이 가르치고 보여주신 말씀을 따라서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어느 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다는(고후 11:10) 고백을 했습니다. 어쩌면 크리스천이 가장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 사람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 때문이며, 그리스도이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인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주제인 진리가 주는 자유란 무엇입니까? 자유란 사전적 의미에서는 육체적 도덕적 정신적인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 자유를 그리스도와의 연합(5:1)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외형적이고 의식적인 율법으로부터의 해방만이 아니라,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참된 해방을 의미하였습니다(6:20-22). 루터는 이런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5:13을 근거로 온갖 굴레에서 해방되는 1차원적인 자유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서 종노릇하는 2차원적인 성숙한 자유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죄의 종에서 해방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의 종노릇을 하기 위해서 오히려 종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향해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고후 5:17) 말했습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달리기하는 선수처럼 달려갈 목표이기도 한 새로운 피조물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왜 자유인이 되려고 하는가? 그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실존을 확인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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