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11(2024. 5. 27. 월요일).

시편 시 68:14-16.

찬송 37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을 이룬다.” 도스토에프스티가 남긴 말이다. 인생을 잘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늘 할 일을 하는 사람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사람 정도이다. 꿈을 꾸는 사람은 많지만, 꿈을 이루는 사람은 드물다. 그 차이도 별 것 아니다. 그날 할 일을 하고 쉬느냐, 할 일을 남기고 자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매일 되풀이 쌓이다 보면 일상이 되고, 일상들이 모이게 되면 멈출 수 없는 습관이라는 마약에 빠지게 된다. 참으로 슬픈 것은 그런 작은 것이 어찌 마약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마르틴 루터가 내일 지구가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하기로 한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명문장이 된 것은 이 하찮고 작은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까닭이다.            박성완. 24. 5. 26.

 

2. “세례자 요한이 보낸 사람들(1-6)”을 읽었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던 존 K. 갈브레이스는 BBCTV 강연회 프로그램을불확실성의 시대/ The Age of Uncertainty(1977)라는 책으로 엮어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특성을 불확실성이라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불확실성의 시대는 불규칙적인 변화로 미래에 전개될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현대를 사회를 주도하는 지도 원리가 사라진 불확실한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진리라고 여겨왔던 많은 것들, 합리성과 이성에 근거한 이론도 의심스러우며,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운 시대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확실성의 개념은 신앙세계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의심과 의문이라는 주제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이런 의심의 그림자를 떨쳐버릴 수 없어서 제자들을 예수께 보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음을 전했습니다. “당신이 오시기로 한 분입니까?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말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메시아가 예수님인지 여부를 말씀해 달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자 너희가 듣고 본대로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걷고, 나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고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확실한 사실들을 불확실한 의심을 물리치는 도구로 내세우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3년이라는 긴 시간을 동거 동락한 제자들은 이 놀라운 사실들을 함께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의심하였을까요? 그 대표적인 사람이 도마였고 가룟 유다라고 할 때,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직접 체험한 분들이 많습니다. 제 아우는 오른 발 오금장이에 돋아난 물혹을 안수기도를 받은 후 씻은 듯 사라졌고, 제 누이는 한얼산 산 기도를 갔다가 방언을 하게 되었는데도, 정적 세상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다 합니다. 소위 체험신앙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속으로 되뇌고 있다는 말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반석위에 우뚝 서 있는 단단한 믿음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2:8).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듣는 사람들,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믿음은 사람의 공로(기도, 찬양, 봉사, 선행 등)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한 하나님의 선물이며 축복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도마나 가룟유다가 의심의 먹구름의 노예로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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