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10호(2025. 9. 3. 화요일).
시편 79:4-6.
찬송 43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19104번, 이 숫자는 빅터 프랭클의 왼쪽 가슴에 노란 다윗의 별 밑에 붙여진 죄수번호였습니다. 사람들은 애써 기억할 필요도 없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름에는 저마다 깊고 깊은 사연들이 새겨져 있는 때문입니다. 고향과 세례를 받았던 교회와 목사님, 그리고 60명이나 되는 초등학교 동창생들, 그리고 큰 소리로 자랑하고픈 직업들이며 얽히고설킨 가족관계들을 떠올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의미도 생명도 없는 번호만으로 모든 것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다른 숫자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할 수 있는 번호만으로 충분했던 것입니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수자를 불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제 번호 중 21번이 가장 많았습니다. 사랑스러운 제 이름은 오랜 훗날 불러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이름을 대신한 그 어떤 대체수단이란 없는데 말입니다.
2. “에니아의 치유(32-35절)”과 “다시 살게 된 도르가(36-43절)”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의 활동과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셔서 남겨진 12제자에 의해 시작된 초대 기독교회의 활동에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수많은 기적의 역사들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어린 시절에 저 역시도 이러한 기적들이야말로 신앙의 진위를 밝히는 도구처럼 생각하곤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의 신앙을 저울질 하시던 저의 중학교 때의 생물선생님에게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들을 꺼내어 기독교의 말씀이 진리임을 증명하려고 했었습니다.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일이며, 물 위로 걸어서 바다 한 복판에 있는 제자들에게 오신 일 들을 성경에서 호출하면서, 기독교회가 가르치는 말씀들이 진리라고 강변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저의 생물 선생님은 우리 마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잘 기억하고 있는 사고와 사건들을 불러와서 타종교나 민간 신앙에서도 잘 알려진 기적 일화들을 불려내어서 저의 말문을 막으셨습니다. 제가 선교활동을 했던 중국 북부의 헤이룽장 성에도 수많은 기적 일화들이 있었고, 내몽고에서도 그리고 베트남이나 몽골에서도 이런 기적 이야기들은 매우 흔한 일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개의 전설처럼 전해질 기적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룻다/리따라는 마을에서 8년 동안이나 중풍병을 앓고 있던 에니아가 베드로의 말 한 마디 “자리를 걷고 일어나라.”는 소리에 8년 동안의 고통스러운 삶을 청산하고 건강한 삶으로 회복되었던 일화와, 다른 하나는 욥바에 사는 신실한 여자 성도 다비다 혹은 헬라 말로 도르가라 불리던 여인이 죽어 그 시체가 2층 방에 안치되었는데, 룻다에 있던 베드로에게 전갈이 갔고, 황급히 달려온 베드로가 죽은 도르가가 누워있는 2층으로 올라가서, 손을 내밀며 “일어나시오.”라고 말하자, 기적과 같이 도르가가 베드로의 손을 잡고 일어나게 된 기적이야기입니다.
어느 핸가 성탄절을 앞두고 내몽고 중심도시 하일러에서 지도자 교육을 하게 되었는데, 한 신실한 나이 많은 부인이 자신의 남편 걱정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남편은 그곳 조선족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국가 관리로써 여러 해 일했다는 자랑스러운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기는 하는데, 그분의 신앙을 지도하기에는 교회 지도자들이 너무 연약했습니다. 당시는 외부에서 찾아오는 지도자들을 공안/公安-경찰들의 경계가 심해서 교회에서는 지나가는 손님처럼 행색을 꾸미고, 교우 가정들을 방문할 때는 친척으로 가장해서 찾아가는 등 매우 살벌한 분위기였습니다. 앞에 소개한 관리였던 분은 십계명도 외우고 사도신경도 고백하는 똑똑한 분이었지만, 성경에서 가르치는 6천년이란 세계 역사가 과학의 눈을 뜨고 있던 그 관리에게는 어리석게만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인은 자신의 남편이 가진 신앙은 허깨비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숨이 넘어가는 위기에 몰리자 저를 강권해서 자신의 집으로 방문하게 했고, 그 분에게 성경의 시간이해를 설명해 드리면서, 우리들 인간의 이성 저편에 있는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도록 권유할 수 있었는데, 훗날 부인의 말을 빌리면, 그날의 저의 방문이 자신의 남편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다시 살려내는 계기가 되었다 고백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생활환경이 열악했던 내몽고와 헤이룽장 성의 촌락/村落 들에서 만나 기도해 주었던 미친 젊은 여자 청년이나, 부인 등이 훗날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기적이란 무엇입니까? 어찌하여 복음을 전하는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위 미친 사람, 병든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요?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거나, 미래가 암울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미칠 수밖에 없는 삶이 그 속의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21세기 개명/開明한 세상에서도 예외는 아니라는 데 슬픔이 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어떤 현상/現狀의 변화만이 기적이 아닙니다. 제정신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성경에서는 주로 이런 현상적인 기적을 강조하고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우리 주님은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등 제자들을 불러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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