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63호(2024. 10. 26. 토요일).
시편 89:25-26.
찬송 5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약자에게는 승산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약자가 옳고 마음속으로 약자를 지지한다 하더라도 약자를 지지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때로는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고, 성공하는 인생과는 거리가 먼 길을 가야 할 수도 있고,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약자를 응원하면서도 결국 강자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약자가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또한 약자가 처한 모든 상황이 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있다. 이따금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자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약자를 도와야 한다. 인생을 정리할 즈음에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 약자를 위해 싸운 일이 평생 한 일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켄트 케이스, 그래도, pp.85-56.
2. “바울이 로마에서 전도하다(17-31절)”을 읽었습니다. 50여 년 전에 만난 대학 동창들과는 격의 없이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어느 특정 교파에 소속된 학교가 아니라, 다양한 교파에서 오신 교수님들로부터 인생과 신학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이구동성으로 감사의 말들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덧 인생의 의미 혹은 가치에 대해서 화제가 옮겨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주제를 진부/陳腐하게 생각한 때문인지, 주로 건강과 노후를 어떻게 보낼까에 대해서 주로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이 되도록 힘쓸까가 아니라, 어떻게 초라하지 않게 건강하게 살 것인가를 관심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해서 부질없는 것에 너무 많은 진/津을 뺐다는 식의 얘기도 나왔습니다. 어느 친구는 자신의 친척을 예로 들었습니다. 유명 의사로 많은 환자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는 삶을 살았다 했습니다. 삶의 마지막을 느낀 그 친척 의사는 자신의 책과 연구 논문 등 많은 자료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을 하는데, 자녀들은 고물장수에게 넘겨버리라고 했다 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 자신의 삶의 자취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어느 의학 박물관에 떠넘기다시피 하며 처리했다 합니다. 젊은 날의 열정과 수고, 뜬 눈으로 새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생명을 살려보겠다던 사랑과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허무감을 금할 수 없었다면서 말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생각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 마디 했습니다. 러시아의 과학자 류비세프를 대상으로 쓴 그라니의 책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를 소개하였습니다. 구소련의 과학자 류비세프는 그가 26세 되던 해인 1916년 1월 1일, 자기의 모든 시간을 철저히 계획, 관리, 기록, 통계, 평가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른바 '시간통계법'을 통하여 그날 이후 죽는 날 까지 56년간을 그는 시간의 효율을 극대화시켜 살았으며, 엄청난 양의 일을 하였습니다. 생물학, 곤충학, 수학, 과학사에도 정통하고, 철학, 문학, 역사에서도 전문가를 능가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며, 70여부의 전문 저서, 타자 원고 12,500장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가 전쟁터에서 조차 자신의 시간을 계산하며 연구했다는 대목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오늘 우리 인류는 저절로 발전하거나 진화한 것이 아닙니다. 류비세프는 물론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땀 흘려 수고한 덕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은 일평생 이방인의 사도로써, 예수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이신 것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전 삶을 바친 것입니다.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압송되었지만, 그는 복음을 전한 기회를 찾았고, 그의 바람대로 그에게 2년이 넘도록 로마의 셋방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하고, 자신이 사람들에게 찾아가기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수고에 대해서 누구하나 공치사 하나 전하지 않는 것에 화도 나고, 낙심도 될 것이지만, 흔들릴 이유는 없습니다. 제가 대학생 시절에 많이 불렀던 노래 가운데, 한 태근 곡 박희진사의 <이 세상 어딘가엔>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엔 남이야 알든 말든 착한 일 하는 사람 있는 걸 생각하라. 마음이 밝아진다. 이 세상 어딘가엔 탐욕과 분심 눌러 얼굴이 빛나는 사람 있는 걸 생각하라. 마음이 밝아진다. 이 세상 어딘가에 청빈을 감수하고 덕행에 힘쓰는 사람 있는 걸 생각하라. 미음이 씻기운다. 이 세상 어딘가엔 하늘을 예경하고 이웃을 돕는 사람 있는 걸 생각하라. 기뻐서 눈물 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나라를 사모하는 이유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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