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66호(2024. 10. 29. 화요일).
시편 89:33-35.
찬송 46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역설의 진리를 받아들이면, 미친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역설적인 진리를 실행하면, 본성대로 살 수 있다. 당신은 삶의 본질이 아닌 것들과 불만족스러운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정말 중요한 일에만 중점을 두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인 진리는 부나 권력, 명예 같이 흔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이라고 여겨지는 요소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대신 의미에 중점을 둔다. 여기서 의미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좋은 일을 하고 대의를 생각하고 약자를 위해 투쟁하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을 돕고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얻을 수 있는 의미를 뜻한다. 그런 행동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 결과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켄트 케이스, 문채원역, 그래도/Anyway, p.107.
2. “미가가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고발하다(1-8절)”을 읽었습니다. 이른바 대형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는 역사의식이 현저히 떨어지는 설교를 하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서 가능하면 정치나 경제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들로 교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주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부 교인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지 세상 얘기 특히 정치얘기는 너무 민감해서 듣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설교자로써 또는 크리스천으로써 우리는 모두 역사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성경 말씀자체가 역사 속에서(Context) 말씀(Text)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성경말씀은 이미 특정한 역사적 배경을 품고 있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그 말씀의 배경을 잘 공부하고 이해한 다음에 본문을 살펴야 할 것이고, 자신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청중들에게 이해가 되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해석의 차이를 두고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겨울 방학 때 미국 미네소타 주의 한 도시에 있는 한인교회 성경반을 방문하였는데, 제가 아는 전도사님께서(박사과정 중)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으신 성경 본문으로 지도하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질문 겸 나름의 해석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은 화학박사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물위에 발을 빨리빨리 움직이셨다면 이것은 기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으로 설명해야 옳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물 위를 걸을 만큼 빨리빨리 발을 뗄 수 있겠느냐는 새로운 물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 다른 난제에 부닥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잘못들과 문제들은 무지랭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리는 지도자들에게 있다는 점을 미가 선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3천 년 전의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가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향해서 강한 말투로, 그리고 준엄한 목소리로 논고를 하고 있습니다. 정의를 따라야 할 그들이 오히려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듯 힘없고 연약한 백성들의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먹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무리 부르짖어도 당신의 낯을 가리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를 향해서 올곧은 말을 해야 할 종교가들이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 비난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환상도 보지 못하고 명쾌하게 들려 줄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이미 불의한 세상과 한통속이 되어 죄악에 깊이 빠진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볼 지도자들은 이미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과는 담을 쌓고 있으니,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1971년도 어느 대학 가장 행렬에는 한국에 오신 예수님이 한국교회 지도자들에 의해서 한국 땅도 밟아보지 못하고 쫓겨난다는 코미디 같은 시사 극을 펼쳤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평안과 축복의 말들로 도배를 하고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짓과 불의 그리고 탐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꿀 먹은 벙어리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한 통속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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