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50(2025. 1. 21. 화요일).

시편 104:28-30.

찬송 18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곡 <동심초>는 설도薛濤(770?~830)란 당나라 시인의 춘망사春望詞를 김 억이 번역한 시를 김성태가 곡을 붙였습니다. “꽃잎은 하욤업시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업네 서로서로 맘과맘 맺지 못하고 얽나니 풀잎사귀 쓸데잇는고(중외일보, 1930. 9. 4). 꽃잎은 하욤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다 기약이 없네. 무심다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가피의 풀잎만 뭐라 맺는고. (학등, 1934. 6. 6). 꽃잎은 하욤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랴는고.(망우초, 1934. 9. 10). 바람에 꽃이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길은 뜬 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맘은 맺지 못하고한갓되이 풀닢만 맺으랴는고.(동심초, 1943. 12. 31)”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에 배운 노래로, 이 노래 때문에 제가 변성기를 맞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 “바알세불과 성령(20-30)”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인가?(31-35)”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성령을 훼방한 죄, 또는 성령 모독죄에 대한 묵상입니다. 이 내용은 공관복음서에서 모두 취급하고 있는데, 그 배경은 조금씩 다릅니다(12:31, 3:28, 12:10). 바알세불은 에글론에 거주하던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신으로, 신약성경에서는 유대인들과 함께 예수님 역시도 귀신의 왕으로 불렀습니다(10:25, 3:22, 11:15). 예수님은 바알세불을 사탄과 동일시하였습니다(12:26, 3:23, 11:18). 그러니까 바알세불은 유대인들은 물론 예수님도 심각하게 경계하는 우상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거나 공격할 때는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들을 쫓아내는 활동하는 것으로 묘사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처럼, 당신을 바알세불의 하수인으로 공격할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귀신 나라의 혼란을 얘기하는 것은 흥미로운 대처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대로 예수님은 성령을 훼방하는 잘못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기독교회는 이른바 성령 모독죄에 대해서 막연한 설명을 하고 있는바,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베푸신 기적들을 바알세불의 힘에 의해 일어난다고 주장한 사람들에게 성령 모독죄를 적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해석하면 성령 모독죄란 이 땅에 계셨던 당시의 예수님께 대적했던 바리새인들에게 해당하는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 모독죄는 예수를 그리스도(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특수한 성령 모독죄는 교회시대를 살고 있는 크리스천들에는 재현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당시의 지상 사역과 성령의 권능을 통한 그분의 기적사건이 또 다시 재현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이후 교회시대의 사람들은 이 죄를 지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 시대에서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못할 죄란 하나도 없으며, 누구든지 무슨 죄라도 고백하여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 성경의 중심사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적으로 거듭난 신자들은 성령 모독죄를 범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구원받은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며, 그들 안에 내주하신 성령님이 계시며, 또 성도들은 그분에 의해 인도를 받기 때문입니다(고후 5:17). 그래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령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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