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억울해서 하는 말 중에, 하나님이 벌주실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을 때, 하늘을 향해서 던지는 말이긴 합니다만, 매우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벌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영원한 심판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아모스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모스는 짙게 깔린 사회악을 고발하였습니다.
세상이 아름다울 수도 있고, 반대로 추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따른다고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해묵은 문제들을 놓고 야단법석입니다. 과거사 청산이 그렇고 국보법 폐지 등의 문제들이 그런 내용입니다. 지난주에는 어느 방송국 앞에서 수천 명의 기독교인들이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데모를 하고 있었습니다. 방송국에서 준비한 교회의 문제들을 방영하겠다는 계획을 취소하라는 항의성 기도회였습니다. 아모스 선지자 시대만이 문제투성이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시대도 예외가 아니며, 이 세상 끝날 까지 계속될 문제들입니다. 아모스는 사회정의가 잠들어 버린 문제를 고발하였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보호를 받고 도움을 주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학대를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면,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반드시 고쳐져야 할 일입니다. 사람을 돈으로 사고파는 인신매매가 환한 백주에 일어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만히 보고만 계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시대를 향해서 법과 질서를 관리하는 책임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한 패거리가 되어서 불의한 세상을 친구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모스는 외톨이가 되어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벌주실 것이라고. 

아모스는 교회가 병들어 있는 것도 고발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불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중심에 계시다고 믿기 때문에 어떤 시련과 역경에도 당당하게 견디고 살아온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신앙이 깊이 병들어 버렸습니다. 신앙의 순수성과 목적이 사라지고, 오히려 출세와 성공의 수단정도로 바뀌어 버렸던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월삭과 안식일은 신앙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날이었습니다. 월삭이란 매월 첫째 날로, 그 날이 되면 사람들은 성전에 나아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전제와 번제 그리고 소제를 드렸습니다(대하 8:13, 민28:11-15, 호 2:11). 그런데 이런 날들이 오히려 귀찮은 날로 바뀌었고, 공공연히 월삭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불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잘못에 대해서 막아서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은 잘못된 것을 바꿔보자고 야단들인데, 교회는 여전히 세습제로, 불투명한 재정관리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신사참배와 독재정권을 비호했던 것에 대해서 침묵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긍정적인 뜻을 가졌습니다.
아모스의 고발은 결코 부정적인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특히 이 세상에서의 심판은, 긍정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새로운 기회로의 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고발이란 형식적인 면에서는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모스는 오늘 우리 시대에도 주목해야 할 선지자라고 하겠습니다. 쓴 소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어두운 과거 들추기가 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앞으로 올 세상을 밝고 희망적으로 만드는 방향성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회가 고발하기 전에 교회 스스로 자정하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습니다. 교회지도자 선발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나, 교회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일은, 기본적인 일인데도 개선될 기미가 전혀 없자, 사회 언론매체가 수술 칼을 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때 불교가 재정문제로 큰 시련을 겪었는데, 불투명한 관리의 결과였습니다. 교회는 이 시대와 역사를 선도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활발한 활동이나 외관보다 더 훌륭하고 귀한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벌주신다는 것은, 우리들의 신앙을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약한 양심을 흔들어 깨워주고, 하나님의 심판만은 언제나 공의롭다는 격려를 주는 때문입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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