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094호(2012. 8. 1. 수요일).
시편 22:19-21.
찬송 50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20세기 초의 영국 작가 제임스 베리가 쓴 <피터 팬>을, 어렸을 읽으면 피터 팬이 보이지만요, 어른이 되었을 때 읽으면 후크 선장이 보입니다. 피터 팬과 후크 선장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요? 피터 팬은 네버랜드에서 사는데 유토피아와는 좀 다릅니다. 토마스 모어가 말한 유토피아는 공동체를 위한 이상향이었고, 네버랜드는 철저히 피터 팬 혼자만을 위한 이상향이니까요. 유토피아입니다. 네버랜드 피터 팬의 말은 곧 법이고 독재 군주나 다름없어서, 피터 팬 혼자만 행복하고 함께 생활하는 다른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지요. 피터 팬은 영리하고 용감하고 잘 싸우고 또 후크 선장의 손을 잘라서 악어 먹이로 줄만큼 잔인하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자라지 않고 늙지 않습니다. 만약에 이런 독재자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독재라니 말이지요. 다행히 제임스 베리는 이 땅에 네버랜드는 어디에도 없는 땅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어디에도 없는 땅 네버랜드에서 피터 팬은 어디에도 없는 시간 어디에도 없는 삶을 살면서 모든 일을 다 잊어버립니다. 마치 늘 새로 태어난 어린이처럼 말이지요. 피터 팬이 용감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비결은, 기억과 추억이 없어서 아픔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비해서 후크 선장은 가진 게 너무 많습니다. 철학자 김용석 교수는 [철학 정원]이라는 책에서 후크 선장을 이렇게 해석하지요. “그는 현실을 잘 안다. 무엇이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냉혹하게 무시해 버리는 피터와 달리, 후크는 별의 별 일에 다 신경 쓰며 산다. 그는 매우 신중하며 때론 누구보다도 뜨거운 가슴을 지니고 있다. 또한 고독을 느끼며 삶을 고뇌한다. 후크는 피터처럼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인정이 많아서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승리하고 승리하는 피터와 달리, 후크는 수없이 좌절과 패배를 맛본다.” 추억이 없는 자와 추억이 많은 자의 대결, 무정한 자와 유정한 자의 대결, 신세대와 구세대의 대결. 피터 팬과 후크 선장이 벌인 최후의 대결에서, 승리자는 당연히 피터 팬이었습니다. 피터 펜은 자신의 칼을 맞고 쓰러진 후크 선장을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배 밖으로 걷어차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그대 결코 잘나가는 인생을 살지는 못한 인물이여, 안녕!” 어린이 입장에서 읽었을 때는 내가 후크 선장을 뻥 걷어차는 기분이 들어서 신나고 통쾌했는데, 어른이 돼서 다시 읽으니까 참 씁쓸합니다. 내가 피터 팬한테 걷어차인 것 같아서 말이지요. 하지만 작가 제임스 베리는 그것이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질 것이 뻔한 가엾은 후크 선장에게, 자신과 같은 이름을 붙여 주지요. 바로 제임스 후크라고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5월 7일 방송>
2. 본문은 우리 역시 쉽게 떠올리게 되는 최후의 심판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물으실까?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했느냐? 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그런 장면 말입니다. 그런데 매우 특별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물으시기를, “나를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고 하시는 점입니다. 그런데 별 볼일 없는 거지나 나그네나 어린 아이를 예수님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점입니다. 물론 이 말씀의 함정은 선한 일을 얼마나 많이 하였느냐? 는 공로주의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세히 몰라서 그렇지 크든 작든 선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행의 경중을 재보는 것은 도토리 키 재기 같아서 큰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관심을 갖고 대하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주님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우리들 이웃으로 번져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만일 주님을 사랑하노라하면서, 헐벗은 거지를 되돌려 보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을 섬기노라하면서 간절한 눈빛으로 얘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을 외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래 전에 인기를 모았던 책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모든 문제풀이를 예수님이라면? 이란 가정법으로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현실 속에서 직면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예수님이라면 이런 가정법을 대입해 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을 그런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적으로 결정하거나 판단하기 힘든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이 구절은 좋은 기준이 되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처럼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님, 제가 주님이 아닌 것이 이렇게 행복할 수 없습니다.”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런 변명이라도 좋으니, 주님 생각을 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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