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55(2000.12.2, 토요일)
성경말씀 : 빌 3:1-3.
찬송 : 418장.
제목 : 교육의 출발점.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2. 저는 요즘 자주 외손자를 만납니다. 매일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아이에게 사용하는 대부분의 말은 “안된다. 하지 마라.”는 금지 용어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놀랬습니다. 사실 저는 입버릇처럼 긍정적인 말의 필요성을 되풀이해 왔다고 자부하는데, 실제 생활에서는 부정적인 말만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그런 부정적인 말을 하더라도 자세히 까닭을 설명하고 이해를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해왔었는데, 그런 말은 한 마디도 찾을 수가 없이, 무조건 “안된다.”는 말만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말 바꾸려는 구차한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설명도 이해도 기대할 수 없는 철부지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교육내용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시작은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할 줄 알게 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깨달음입니다. 저는 십계명을 읽을 때마다 왜 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을까? 전 근대적인 교육방식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품어왔는데, 그 까닭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철부지 인생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생명을 보존하도록 도와주는 금지조항을 익히는 것뿐이라고 말입니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에게 제 마음대로 선택하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자유를 주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그는 미숙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자신을 해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어쩌면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이런 단계에서는 우선 생명을 보호하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오늘 본문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 할례당을 삼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가라”는 말은 조심하라는 뜻인데, 가까이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자기 집에서 기르지 않은 개에게 접근하다가는 물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용어들은 상징적인 해석이 필요합니다. 짓기 잘하고 물기 잘하는 개 같은 사람들이나, 악을 저지르면서도 당당하게 행동하는 사람들, 할례의 정신을 상실한 체 그 형식만을 내세우는 율법적인 고집쟁이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 결과는 심각한 상처를 얻게 되거나 귀중한 생명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아직 누리고 즐겨야 할 아름답고 찬란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 꽃다운 나이에 시들어 죽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인 분별력이 생기기 전에는 “안된다”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선 살아 남아야 미래든 희망이든 품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4. 우리는 몸집은 어른이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사는 길과 죽는 길조차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하면, 성숙한 어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먼저 할 일과 나중할 일을 골라서 순서를 매기지 못하고서, 눈에 보이는 것에 매달리는 사람이라면 여전히 어린 아이임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금지조항을 지켜야 합니다. 해서는 안될 것부터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목사로써 여전히 이런 금지조항을 말하고 있는 자신을 서글프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 모습이 어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부터는 당연한 일이라고 자위하게 되었습니다.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나기까지는 이런 금지조항이 가장 적합한 교육 내용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속히 금지조항의 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영역을 넓혀서 이웃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그런 자랑스런 사람들 속에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5. 그러나 이런 희망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금지조항들에 주의를 기우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충실하게 가르칠 각오도 가져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혹시 제 얘기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아이로 취급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여러분의 인격을 해치고 있는 말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얘기할 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오히려 기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 시절에는 책임질 일 보다는 누릴 권리가 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흔히 신학에서는 이런 금지조항의 대명사인 율법 혹은 십계명을 일컫기를 ‘거울', ‘안내판’ 그리고 ‘경계석’이라고 부릅니다. 거울이라 함은 이런 금지조항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말이며, 안내판이라 함은 이런 금지조항을 통해서 빗나가지 않고 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경계석이라 함은 살고 죽는 위험 지대를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표지가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금지조항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6. 교육의 첫걸음은 “안된다”입니다. 그것은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 같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이런 금지조항 들이 긍정적으로 이해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생명이 풍성하게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생명을 보호하는 교육은 절대로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는 신앙과 정신이 자라나게 되어서, 조금씩 조금씩 “하라.”는 교육 내용으로 바뀌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날이 우리들에게 속히 오게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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