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449호 (2013. 7. 22. 월요일).
시편 시 106:32-36.
찬송 10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이로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케냐 여성, 나이로비 대학의 첫 번째 여성교수, 그리고 200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첫 번째 아프리카 여성. 이렇듯 아프리카 여성으로써 많은 최초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왕가리 마타이입니다. 그러나 왕가리 마타이를 설명하는 최고의 수식어는, 역시 나무들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프리카 여성으로써는 드물게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조국 케냐는 물 부족과 영양 결핍 가난 등으로 더욱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케냐가 이렇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마타이 박사가 어렸을 때만해도, 고향 마을은 나무가 울창하고 녹지도 많고 토양이 비옥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황폐해지고 만 것은, 부패한 케냐 정부가 개발 이익을 노리고,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면서, 무분별하게 국유지나 공유지를 개발했기 때문인데요. 이대로 지켜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마타이 박사는 1977년 여성이 주축이 되는 그린벨트 운동을 시작했는데요. 201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프리카 전역에 심은 나무가 무려 4천여만 그루. 이렇게 열심히 나무를 심었던 이유는, 환경을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독재 정부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었고, 무지한 남성들을 향한 여권 운동이었지요. 그 때문에 여러 차례 걸쳐서 구속과 가택 연금, 테러까지 당했는데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용기를 가진 훌륭한 인물인 점은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겨우 나무 한그루 심는다고, 과연 사회가 바뀔 수 있을까? 이런 우리들에게 왕가리 마타이 박사는 아프리카 벌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날 숲에 큰 불이 났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겁에 질려서 숲에서 뛰쳐나왔습니다. 동물들은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작은 벌새가 말했지요. “나는 이 불을 끄기 위해서 무언가 할 거야.” 벌새는 가장 가까운 냇가로 날아가서 물 한 방울을 가져와서는 불이 난 곳에 물을 뿌렸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냇가로 날아가서 물 한 방울을 또 가져와서 불 위에 뿌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다른 동물들은 벌새보다 더 큰 부리와 더 큰 입으로, 더 많은 물을 가져올 수 있었는데도, 그냥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이지요.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불이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벌새는 계속 한 방울씩 물을 나르면서 왔다갔다를 반복했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벌새에게 말합니다.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불이 너무 커. 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냥 이리 와서 우리와 함께 있어.” 작은 벌새가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6월 5일 방송>
2. 이방인의 첫 교회 안디옥 교회는 자생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를 경험하고 기독교 신앙을 가진 몇 사람들이, 유대인들에게만이 아니라,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그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 지도자로 파송하게 되고, 바나바는 사울을 찾아 동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안디옥 교회가 모범적인 교회로 성장해 갔을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듣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디옥 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작은 그리스도” 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입니다. 신약에 3번 크리스티아노스라는 말이 쓰였는데(행 11:26, 26:28, 벧전 4:16), 그 번역을 그리스도인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안디옥 교인들은 자신들의 선행과 친절에 대해서 칭찬을 들을 때마다, 그리스도가 그렇게 하라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기 때문에(24절 참조),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라는 뜻에서 그리 불리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인을 세상이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가장 비정하고, 선행을 말하면서도 악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적어도 신앙인은 큰 소리로 떠듦으로써가 아니라, 조용한 삶으로 자신의 신앙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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