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57호(2019. 8. 8. 목요일).
시편 29:3-5.
찬송 15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일기도의 날씨 기호를 공부하던 핀란드 초등학교 교실에서 입니다. 호스카 선생님이 칠판에 일기도에 사용하는 기호며 좋아하는 날씨 기호를 그리라고, 오늘의 수업 내용을 적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중에는 바로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아이들도 꽤 있습니다. 자신이 읽던 동화책을 계속 읽는 아이도 있고, 다른 시간에 배운 뜨개질을 계속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냥 멍하게 가만히 있는 아이도 있지요. 하지만 선생님은 크게 혼내거나 재촉하지 않습니다. 아이 개성에 따라서 좀 늦게 수업에 참가해도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공부도 수업도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바로 유명한 핀란드식 교육입니다. 그런데 딴 짓을 하던 아이 중에 뜨개질을 하던 아이는 뜻 밖에도 남자아이 입니다. 그 아이는 얼마 전 공예시간에 처음 배운 뜨개질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 아이만이 아니라, 3학년 교실에는 요즘 남학생들 사이에서 뜨개질 배우기가 유행입니다. 그 유행에 특히 더 심취한 아이는 다른 수업이 시작돼도 뜨개질 감을 놓지 못합니다. 호스카 선생님의 수업에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곧 아이도 뜨개질을 멈추고, 일기도의 날씨 기호를 찾거나 옮겨 그렸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또 곧 바로 뜨개질 감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들고 교실 밖 복도로 나갔습니다. 아이 주위로 몇몇이 더 모여들었고, 남자 아이는 즉석에서 뜨개질을 가르쳐 줍니다. 갑자기 뜨개질 교실이 열린 겁니다. 사실 남자 아이가 가진 큰 포부는 바닥 깔개를 뜨는 것입니다. 누나가 한 것을 보고 자신도 해 내려는 겁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11월 2일 방송>a.
2. “예수의 마지막 분부(36-49절)”와 “예수의 승천(50-53절)”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단락 “예수의 승천”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사도신경(혹은 사도 신조)를 고백할 때, 예수님의 승천을 고백하기 때문에 예수의 승천을 복음서가 보편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누가문서(누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칭하는 단어)를 제외하고, 신약성서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승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연히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 마가, 요한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승천에 관한 기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과, 누가문서의 저자는 어떻게 예수님의 승천에 관한 문서를 입수해서 기록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보탠다면 누가복음서는 예수님의 승천 장소를 예루살렘 부근의 베다니로 기록하는 것에 반해서, 행전에서는 갈릴리의 어떤 곳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차이는 왜 생겼을까 라고 하겠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질문은 네 복음서의 기록 동기 혹은 목적과 관련지으면 쉽게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와 마가복음서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복음서를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떠돌아다니고 있었던 여러 종류의 자료들을 취합 정리했던 것인데, 불행하게도 승천기사만큼은 마태나 마가 그리고 요한복음서 기자들이 좋은 자료를 입수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누가문서 기자는 데오빌로라는 로마의 관리에게 기독교회를 변증해야 할 목적으로 누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남다른 수고로 승천자료를 얻었음에 분명합니다. 이런 설명을 하노라면 순박한 우리 독자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이렇게 불완전할까 하고 낙심할지 모르겠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서로 모순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말씀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투성이인 인간을 불러서 일꾼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눈을 떴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저도 딱히 설명할 힘이 없습니다. 참고로 주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예배당은 베다니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팔복을 말씀하신 팔복 교회로 뭇소리니가 후원해서 지은 성당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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