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750호(2019. 11. 9. 토요일)
시편 46:1-3.
찬송 45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삶이 조금 쓸쓸하고 막연하게 느껴지는 이후로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벌어지는 일 현재 진행형인 일에 대한 우리들의 시야가 늘 좁고 불완전하다는 게 크게 한 몫을 합니다. 어떤 문제나 상황이 다 끝난 뒤에, 게다가 돌이킬 수조차 없는 그 지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잘 잘못이 가려지거나 또 어느 지점부터 어긋났는지 선명하게 알 수 있지요. 특히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그런 뒤늦은 안타까움은, 큰 후회를 남기기도 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돼서야, 나 자신의 무신경이나 부족한 배려가 절감되면서, 마음을 아프게 파고들기도 하지요. 시인 이 동순의 시 <아버지의 일기장>에는, 그런 뼈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 남기신 일기장 한 권을 들고 왔다/ 모년 모월 종일 본가/ 종일 본가가 하루 온 종일 집에만 계셨다는 이야기이다/ 이 종일 본가가 전체의 8할이 훨씬 넘는 일기장을 뒤적이며/ 해 저문 저녁 침침한 눈으로 돋보기를 끼시고/ 그날도 어제처럼 종일 본가를 쓰셨을/ 아버님의 고독한 노년을 생각한다” 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일부러 하루 종일, 종일 본가해 보면서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고 시를 맺고 있습니다. 만일 시인이 아버지의 일기장의 80%가,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이렇게 채워지고 있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자면 덩달아 쓸쓸해지곤 하지요. 그렇게 삶 전체에는 지금의 이 깨달음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싶은 뒤늦은 후회의 파장으로 늘 출렁거리는 것 같애요. 하지만 대부분의 조망의 지혜란, 모든 것이 다 끝난 후에야 오기 때문에, 그 거친 파장으로부터 쉽게 도망칠 수도 자유로워질 수도 없겠지요. 그저 조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현재 어느 길 그리고 어느 쯤에 내가 있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할 수 있을 뿐입니다. 바로 그 정도만 잘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것만으로도 매번 힘들고 어렵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0년 10월 29일 방송>
2. “목자 없는 양(35-38절)”과 “열 두 사도(10:1-4)”을 읽었습니다. 저는 루터의 <탁상담화>를 자주 읽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아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제자들과 나눈 이야기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질문을 받아서 한 말일 수도 있고, 그때그때 시류를 지켜보면서 필요한 말씀이라 생각하고 나눈 얘기들인 셈입니다. 그래서 그냥 철학자나 교사들이 책상 앞에서 어떤 주제를 피력하는 것과는 사뭇 현장감이 있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평신도들이 복음서를 읽으면서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같은 주제의 말씀들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언급되는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주제의 말씀을 짧게도 길게도 그리고 서로 다른 말씀들과 연결 짓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다르게 기록하였는데,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그러나 조금 전에 제가 루터의 <탁상담화>를 말씀드렸는데, 다행히 그 현장을 기록한 사람이 한 사람이어서 말이지, 두 세 사람이 저마다의 기록을 남겼다면 오늘의 공관복음서와 같은 기록물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들은 말씀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옮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들이 불쌍하다 생각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양들이 시달리고 허덕이며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목자가 없으니까 시달렸고 허덕였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제대로 먹고 마시지 못했고 마음 편히 쉴 수도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시대를 보시는 주님께서 같은 생각을 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목자들은 자신의 양들을 제대로 먹이고 마시게 하고 있을까? 제대로 쉬게 하고 있을까? 그런 질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도록 전해야 할 목자들이 엉뚱한 소리나 하고 있는 것은 물론, 성경 말씀과는 전혀 다르게, 줄곧 엉뚱한 것 곧 주일 성수나 헌금 강요가 태반인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쁨과 감사함이 넘쳐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들리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주님이 찾고 계시는 그런 목자는 보이질 않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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