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배와 의식

 

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회는 한 주일도 쉬지 않고 매 주일이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일정한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모였다. 처음 얼마동안은 제대로 된 건물이 아니라, 한적한 강변이나, 언덕에서도 모였고, 벽이 없는 그런 빈 집에서 도 모였다. 물론 예배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의 온갖 문제들을 가진 체 교회로 모인다. 비바람이 불고 냉기가 들 때마다, 더욱 시달리는 노인들의 관절 염, 지친 어머니의 팔에 안겨 짜증스럽게 울어대는 아기들의 울음소리와 그 어머니 의 난처함, 세상과 관계된 온갖 근심과 걱정들, 사업상의 문제들, 가족간의 불화들, 뒤엉켜있는 인간관계들, 그리고 지난밤에 다투다가 보류해 둔 문제들, 예배에 참석 한다고 해서 이런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내를 잃은 홀아비의 외 로움이나, 아침 식사 때 부모들과 한바탕 다투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뛰쳐나온 십대들의 흥분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예배드리러 올 때마다 차 안에서 한바 탕 입씨름을 하고 온다는 40대 주부도 있다. 나름대로 힘든 문제들을 안고 있는 사 람들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나. 예배당에 들어설 때 :

    우리들이 어느 집에 들어갈 때는 먼저 노크를 한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설 때도 노크가 필요하다. 그것은 예의에 속하는 일이다. 이런 예의나 예절은 함께 사는 공 동체 생활에 있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지난 2천년 동안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배 당에 들어서서 제단을 향해서 머리를 약간 숙여 목례를 표하거나 십자성호를 그었 다. 그것은 하나님께 향한 가장 소박한 인사라고 생각했고, 십자성호는 자신들이 이 미 받았던 세례를 상기시키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자녀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받은 세례를 기억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은 없을지 모른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 세례는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다시 살게 되었다는 것을 항상 새롭게 일깨워주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신 교회 일각에서 십자성호를 잃어버린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다. 예배는 하나님의 활동이며 동시에 사람의 활동이다 :

    모든 예배는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된다. 곧 예배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으로 우리들에게 오시는 행동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고(43:1), 우리들이 하나님 자신과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손을 우리에게 펴시고, 예배가운데서 우리들을 하나님 자신에게로 더욱 가까이 끌어당기신다(요일 3:1,4:10, 51:16). 그리고 말씀과 성례전을 통해서 알게 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방법이다(요일 2:1-2, 4:9).

    또한 예배는 믿는 자들이 마음(12:30)과 뜻(130:1-2)과 정성(고전6:20)으로 동료, 믿는 자들과 함께(10:25) 그리스도를 통하여(14:6)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이다(95:6-7). 예배 안에서 모든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의 하늘 아버지께로 나아간다. 예배는 믿는자들이 서 있거나(134:1), 노래를 부르거나(100:2) 그들의 머리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는(45:23) 등의 구체적인 행동을 하면서 하나 님께 나아가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과 예배 자들 사이의 상호 교제이지, 어느 한 편에 의한 일 방적인 활동이 아니다. , 하나님은 그를 예배하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16:19,18:21-22), 자신의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확신을 주시며(고후3:4), 믿는 자들의 삶의 길을 인도하시고 (23:1-6), 그들에게 말씀(8:47)과 성례전을(26:26-28) 통하여 성령을 부어 세상 으로 파송하시는 일(9:1-2)을 하신다.

 

또한 예배자들은 예배를 통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리고(고전6:20), 자신의 죄와 신앙을 고백하며(요일1:8-9, 5:16),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7:7-8, 12:12-19),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4:10). 그러므로 더 이상 예배를 본다.’던 지, ‘예배를 드린다.’는 말로 예배의 성격 을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 되겠다. 예배는 하나님의 일이며, 동시에 예배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라. 개인적 헌신과 공적 예배의 차이 : 

    개인적 예배와 헌신은 순전히 개인의 의무와 특권이다. 자유로우며 꾸밈이 없는 특 징을 가진다. 그러나 공적인 예배는 교회의 특권이며 책임이다. 그래서 이런 공중 예배는 그 순서가 잘 갖춰져야 하며, 관리되어야 마땅하다. 공중 예배는 추상적이 아니 라 구체적이어야 한다. 예배자들이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며 협력하면서 참여해야 하 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중 예배는 시간, 장소, 형식, 그리고 음악적인 것들이 준비되어 야 한다. 존경, 엄숙함, 아름다움, 효율성이 적절한 양식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듯 공적인 예배가 교회의 책임이기 때문에, 지난 2천년동안 교회는 성경이 추천 하거나 혹은 제한하지 않는 범위에서 꾸준히 예배의 틀을 갱신해 왔다. 수 없는 작업 을 거친 끝에 마침내 오늘과 같은 기본적인 양식을 구성하게 되었다. 공적 예배가 되 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 공적 예배의 삼요소 : 

    예배란 공적인 일혹은 사람의 일이란 헬라어 레이뚜르기아에서 왔다. 예배는 공적인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예배의식(Liturgy)이라는 말의 기원이 있다. 하나님의 일 꾼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이 있었다(1:23, 13:2, 고후9:12, 2:17,30, 9:21).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해야 할 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를 드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레이뚜르기아가 교회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라는 것으로 좁은 의미 를 갖게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공중 예배가 되기 위해 서는 몇 가지 구성요건이 되어야 하는데, 첫째는 순서(Order)가 있어야(고전14:26) , 둘째는 의식(Rite)이 있어야(고후14:27-33) 하며, 셋째는 예식(Ceremony)이 있어 야(고후34-36) 한다는 점이다.

   먼저 순서라 함은 예배 내용의 배열 혹은 예배로의 접근을 의미하는데, 예배자들이 다 함께 이해할 수 있는 고정된 진행과정을 정리해 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중 예배는 개인의 응답과는 달리, 공동의 표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예배자는 무엇 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알아야 하고 기대할 수 있는 순서가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의식의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의식이란 음성으로 표현되는 일체의 예배 내용을 말한다. 찬송을 하거나 신앙을 고백하는 일 그리고 침묵하는 일 까지도 다 여기에 해당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지역 교회 형편에 따라서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고 노래로 불려질 수도 있다.

   세 번째 의식의 요소인 예식이라 함은, 예배에서 음성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없기 때 문에, 동작과 행동에 관계된 내용들을 의미한다. 예배가 처음부터 끝까지 회중을 앉 은 자리에 붙박아 둔다고 한다면, 굉장히 지루하고 답답할 것이다. 그래서 의식예배 는 예절을 갖춘 여러 지시사항들을 고려하고 있다. 찬송을 부를 때 일어서게 한다던 지, 죄를 고백할 때는 무릎을 꿇게 하며,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자리에 앉도록 한다던 지하는 일이다. 전통으로는 촛불 점화자와 찬양대원들 그리고 예배인도자들은 제단 을 향해서 행진하는 관습도 있다. 또한 예배 봉사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예복을 입도 록 한 것(28:1-43)도 예전적(의식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바. 예배의 구성 : 제사적이며 성례전적인 성격. 

    예배는 크게 두 가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제사적인 내용들이고, 다른 하나는 성례전적인 내용들이다. 제사적인 내용이라 함은 우리 예배자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내용들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써 기도와 찬송 그리고 봉헌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내용들이 진행될 때 예배 인도자는 모든 인간을 대리하기 때문에, 그는 제단을 향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행되는 내용이 제사적이라는 것을 예배자 들이 알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리고 성례전적인 내용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과 성례전(고전11:26)을 통해서 우 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들을 말하는데, 사죄선언, 성경봉독, 설교, 성찬 그리고 축복 선언(강복-축도/6:22-26)과 같은 것들이다. 이 때는 예배인도자가 하나님을 대신하 기 때문에 그는 회중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이나 예배자 중 어느 한 편에 의한 일방적인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배자들 사이의 만남 혹은 교제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예배 가운데서 오셔서 말 씀과 성례전으로 임재하시고, 예배자들은 그 하나님을 향해서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가 극적인 성격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제사적인 내용 들과 성례전적인 내용들이 대화적으로 구성될 때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 시고 예배자들이 그에 대해서 응답하게 될 때, 이런 극적인 성격을 구현할 수 있으며, 또한 예배가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가지도록 구성할 때도 이런 극적인 성격을 이룩할 수 있다고 하겠다.

 

사.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할 유산들 :

     참된 기독교회란 무엇을 뜻하며, 그리스도의 교회가 어떻게 살며 일해야 하는지, 리고 한 영혼이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기독교회가 물려받은 세 가지 유산을 검토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사도들과 순교자들(2:20) 그리고 교부들의 시대로 돌아가 살펴보는 일이다.

그리고 둘째는 종교 개혁자들의 메 시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모든 장래 세대들이 배울 수 있도록 교회에게 큰 깨우침을 주면서 지난 수 세기동안 하나님께서 세워주셨던 은총 을 입은 영적 지도자들을 회상하는 일이다.

   예배의 유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의미 있고 장중한 것이 되려고 한다면, 하나님과 예배자들과의 만남이 의미있는 것이 되도록 어떻게 우리들 신앙의 선진들이 힘써왔는지를 살필 수 있을 때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기독교회가 지난 2 천년동안 예배에 들여온 공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배란 모든 기독교인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과제가 있기 때문에(4:23), 초대 교회 이래로 기독교회 가 가장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우려왔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교회력의 출현에 관해서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게 될 때, 바로 이와 같은 관심에서 출 발하였고, 발전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예전(의식)과 관계된 연구가 계속 진행되어 온 까닭이 여기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한국 기독교회의 일각에서는, 교회의 예전(의식)에 관한한 역사적인 단절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기독교회는 역사적 인 종교이다. 무시간적 초월적인 종교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이 구체적인 역사의 한 복판에 오셨고,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역사적인 것(사 복음서)이 었다. 그리고 제자들은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신앙을 증거하면서(행전과 서신들) 오 늘에 이르렀다.

    기독교 예배 역시 이런 역사성을 가지고 오늘에 이르렀다. 기독교 신앙을 세상에 증 거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써 예배는 역사 속에서 부단히 연구되었고 드려졌다. 차 제에 이런 예배의 역사성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아. 예배의식의 갱신에 관한 관심 필요 :

    개인주의가 심화되어 가고, 대부분의 작은 공적 모임들이 폐지되고 있는 인터넷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전 세계를 통하여 기독교인들이 주일이 되면 예배드리기 위해서 일정한 장소에 모여, 찬송을 부르고 자신의 마음속에 담긴 고백을 하며, 거룩한 행동에 동참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이런 예배모임에서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참 평안과 기쁨 그리고 소망을 얻는다고 믿고 있다. 이런 예배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회는 지금까지 존속해 올 수 있었다고 말할 때 조금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는 항상 자기 변화를 시도해 왔다는 것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가령 예수님의 제자들도 역시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 적합한 예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변화를 시도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월절 만찬 해석이다 (고전11:34, 26:27-29). 우리가 아는 대로 유월절 만찬은 유대인의 전통(12:11, 21-28)이다.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을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보여주는 출애굽이란 역사적 사건에 터를 둔 민족적인 축제일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런 유대인의 명절 을, 자신들의 구세주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신 사건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유월절이 성만찬 제정일로 재해석된 것이다.

   또한 현재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예배관련 자료는 주후 220년에 기록된 순교자, 성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Apostolic Tradition)인데, 아마도 이 자료는 동서 기 독 교회를 통틀어 가장 정통성있고, 전통적인 최초의 예배 개요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료에서 세례 예식이 소개되고 있는데,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삼위일체적 공식 문구(28:19)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적어도 그 때까지는 삼위일체 교리가 확립되지 않았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례예식에서 삼위적 공식문구는 빼놓을 수 없는 내용이 되었다. 이렇듯 예배의 내 용은 계속 새로워졌고, 그것은 지난 2천년동안 시대적인 요구에 응답하며 변천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것들이 이 권위를 주는 것이 사실이 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들이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할 것과 변해서는 안 될 것이 있어야 한다는 진리이다. 진리는 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진리를 전달하는 도구는 변해 야만 한다.

   우리 한국 민족은 예전적인 민족이다. 예로부터 유교적인 전통이 지배하는 문화 속 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예전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을 가진 민족이라고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인 기독교회의 예배 의식을 배우는 일에 있어서 흥미를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예전을 우리 문화에 잘 적용해 갈 수 있는 충분 한 능력도 있다고 하겠다. 작금과 같은 무질서와 무례하기까지 한 예배 행태에서, 장엄하고 경건한 의식 예배로 그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관심과 노력이 절 실히 요구되는 것은 시대적인 과제라고 하겠다.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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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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