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974호(2020. 6. 20. 토요일).
시편 88:11-13.
찬송 5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 또한 나와 같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세상은 내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 사랑을 확신한 이의 마음은, 늘 불안한지도 모릅니다. 얻고 나면 잃게 될까봐, 늘 노심초사하게 되니까요. 사랑을 확신하고 가장 힘찬 노래를 불렀던 물방앗간 젊은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찾은 노래, 슈베르트가 만든 스무 곡의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이제 열 두 번째 곡 “쉼”으로 넘어갑니다. “나의 류트를 벽에다 걸고, 초록색 리본을 감아두었네. 나 더 이상 노래할 수 없네. 내 마음 너무도 벅차 어떻게 운율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네. 더 없이 강렬한 내 그리움의 고통을 익살스런 노래로 읊조릴 수도 있었고, 그토록 달콤하고 우아하게 탄식할 때에도, 내 괴로움이 작지 않다고 믿었는데. 아, 내 행복의 무게가 실로 얼마나 큰지, 이 세상 어떤 소리로도 그것을 담아내지 못하네. 사랑스런 류트여, 이제 여기 벽위에서 안식하여라. 한 줄기 미풍이 너의 현 위로 불고, 벌 한 마리 날개로 너를 스쳐 지나가면, 나는 불안해져 전율하게 되네. 왜 내가 리본을 그토록 오랫동안 걸어 두었을까? 종종 리본은 구슬픈 소리를 내며 현 주변을 나풀거리는데, 그것은 내 사랑의 괴로움이 만든 메아리인가? 새로운 노래의 전주곡일까?”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14년 6월 21일 방송>
2. “만족할 줄 아는 신앙생활(6-10절)”과 “믿음의 싸움(11-21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개역 성경 에서는 소제목을 “자족할 줄 아는 신앙생활”로 되어 있는데, 번역의 어감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만족 혹은 자족(自足)이라는 말은 행복한 경지를 이르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타는 목을 축인 시원한 물 한 잔, 고픈 배를 든든하게 채워준 밥 한 그릇, 곤한 몸을 쉬게 해주는 달콤한 한 잠, 이런 것들은 사람들을 더 없이 행복하게 해 주는 구체적인 내용들일 것입니다. 이 정도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거나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지나친 욕망으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공자의 논어 술이편에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구부려 베고서 잠을 자는 궁핍한 생활일지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안에 있으니”(飯蔬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행복이라면 누리지 못할 사람이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욕망은 지나치다 못해 넘쳐서 평생 쓰고도 남을 재산을 긁어 모르려 힘쓰니 말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행복과는 너무 먼 삶을 택한 것입니다. 성탄절이 오면 한번쯤 생각해 보는 찰스 디킨스의 <Christmas Carol>이 그 교훈을 전해 줍니다. 사람에게는 먹고 마시고 싶다는 생리적(生理的) 욕망과 함께,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에게 그 필요를 나누고 싶다는 윤리적(倫理的)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이란 바로 그런 곳이기 때문입니다.
만족이라는 말을 개역본에서는 자족이라고 번역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自足이란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이라는 의미인데, 자신의 분수를 아는 때 갖게 되는 만족감이라는 말입니다. 저의 교우 중 한 분인 장로님은 94세에 별세하셨는데, 항상 소식(小食)을 하셨습니다. “좀 더 드세요.” 라고 청하면,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고 대답하셨습니다. 배가 부를 만큼 많이 드셨다는 뜻이 아니라, 위에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먹었다는 뜻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본문에서는 경건한 생활 원칙을 따를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쓸데없는 질문과 토론에 열중하거나, 시기와 다툼, 비방과 의심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 신앙생활을 이득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 일이라 말씀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라고 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애를 쓰다보면 유혹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린다고 충고합니다. 그리고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게 모든 죄와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만족이란 분수를 모르고 끌어담는 욕심입니다. 만족이란 주어진 것으로 즐기고 감사하는 삶으로, 욕심에서 해방된 세계나 사회는 바로 천국이었습니다.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자신의 분수를 깨우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은총으로 저의 딸 식구 세 사람은 모두 음성판정을 받고, 아산에서 2주간 격리에 들어갔습니다. 기도와 격려 를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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