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73.

시편 시 106:12-14.

찬송 3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잘 살았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그 말을 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다리진 말자. 지금 이 순간, 삶의 한 가운데로 그 말을 끌어내자.” 알렌 쿠엔의 [내 것이 아니면 모두 버려라] 중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이런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는 가끔 왜 그 때 좀 더 솔직하지 못했을까? 왜 좀 더 감정에 충실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를 할 때가 있는데요. 지나간 뒤에 후회하기 전에 지금 내 가슴이 시키는 일,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에도 귀를 기우려 건 어떨까요? 머리보다는 가슴이 시키는 일을 더 많이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편안한 휴일이니까요. <KBS FM 1, 새아침의 클래식, 200799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열일곱째 주일로, 복음서 마 21:23-27을 본문으로 예수의 권세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권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의 권세가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권세가 있는데 오늘 말씀의 주제인 예수의 권세, 곧 하늘에서 온 권세입니다.

 

예수님의 권세에 정통성을 따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23).

바벨론 포로 이후 유대나라는 회당이 생겨났고, 예수님은 나사렛과 가버나움 등의 회당에서 가르치곤 하셨습니다. 랍비라는 평신도 지도자가 가르칠 수 있었는데, 바울 사도가 랍비학교를 다닌 것으로 봐서, 예수님 역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랍비였음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유독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지도력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물론 병자를 고치는 등의 힘(권세)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매우 궁금했고 의심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면전에서 껄끄러운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는 건 무슨 권세로 하는 것이며, 누가 그럴 권세를 주었느냐고 말입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신학교는 나왔으며, 어느 교파의 목사냐는 것입니다.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를 반문합니다(24-26).

알쏭달쏭하고 긴가민가 하는 문제풀이는 비유나 실례를 드는 것이 쉬운 대답입니다. 그래서 요단강 가에서 수천 명을 몰고 다니며 회개의 세례식을 베푸는 요한을 예로 들었습니다. 요한은 누구에게서 권세를 받아 세례를 베풀었느냐? 하늘이 준 것이냐, 아니면 사람이 준 것이냐고 반문합니다. 요한을 시기 질투하였던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 역시 늘 품고 있던 질문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도대체 저 사람이 내뿜는 권세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늘로 부터든 세상으로 부터든 어느 쪽으로도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신념도 용기도 없는 사람들인 때문입니다. 솔직함조차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쉬운 대답, “모르겠습니다.”을 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대답 대신 진지하게 묵상할 시간을 주셨습니다(27).

저를 포함해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응답받는 기도생활을 희망합니다. 요즘 널리 회자되는 <인디언 기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위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는 걸 두고 하는 말입니다. 비 문명권 세계의 사람들이라 무시를 당하는 사람들이지만, 기도의 정도(正道)를 가르쳐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맡기는 가장 구체적인 신앙입니다. 답답하고 궁금한 것을 쉽고 빠르게 얻는 것 보다는, 그 문제가 왜 중요한 것인지,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 우리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는 말입니다. 저를 돕던 한 전도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이 가슴을 치며 빌었던 모든 기도들이 훌륭하게 응답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주님의 권세에 대해서 신중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묵상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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