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2000.12.13, 수요일)
성경말씀 : 벧전 1:3-6.  
찬송 : 300장.
제목 : 하나님을 찬송하라.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2. “조용할 땐 말씀 읽고, 힘겨울 땐 기도하고, 즐거울 땐 찬송하라.” 어디서 들어본 말씀이지요? 우리 성도들의 삶은 어느 때든지 의미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순경이든 역경이든 그런 삶의 형편이나 조건들이, 우리가 가는 신앙의 길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보조자료가 될 뿐, 더 이상 다른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제는 한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최근 그의 신상에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몸 안에서 암덩어리가 발견되었고, 수술을 하였습니다. 얼마 살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가지고, 마지막 공부가 될지도 모르는 학기를 보내겠다고 다짐하던 것이 지난 8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머리털이 성큼 성큼 빠지지도 않았고, 어제 검사에서는 지극히 좋은 상태라는 의사선생님의 진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전에도 상당히 차분한 성품이었는데, 수술 후에는 더욱 인생과 삶 그리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그의 자세가 근본적인 면에서 많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삶의 길이보다는 삶의 내용과 질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나의 소망에 대해서보다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가르치는 바울 신학에서 여러 가지 주제들을 주마가편 식으로 배울 수 밖이었습니다만, 특별히 그에게 도움이 되는 신앙적인 격려가 바울의 고백 속에서 담담하지만, 분명하게 각인될 수 있었다고 느껴집니다. 

3. 만일 우리들의 삶에 기쁨이나 즐거움이 없다고 한다면, 상대적인 비교를 할 때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능한 일이지만, 어쩌면 우린 평생 찬송할 기회를 가지지 못할 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 즐거워하는 것입니까? 오래 잊고 있었던 친구가 불쑥 얼굴을 내밀 때, 기쁨이 생깁니다. 별로 잘 쓰지도 못한 글인데도 많은 격려와 용기 있는 찬사를 받을 때도 그렇고, 아무튼 즐거움이란 우리 자신을 만족시키거나 고무시키는 원인이 제공될 때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실험해 볼 수 있습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 동료들과 이런 약속을 한번하고 실천해 보십시오. 매일 첫 번 째 대면하게 될 때,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서 적절한 칭찬을 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가령 “이 선생님, 오늘 넥타이는 정말 센스가 있으시군요. 누가 고르신 겁니까?” 한더던지, “김 선생, 밝은 얼굴을 보니까 생기가 돕니다. 당신은 참 좋은 인상을 풍긴답니다.” 이런 저런 칭찬의 말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여러분의 마음은 잔잔한 기쁨으로 흔들릴 것이고, 어쩌면 전철에서 내내 괴로워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쉽게 풀릴 것 같은 그런 힘이 솟는 것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듯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런 기쁨의 원인 제공을 받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누구 하나 나를 만족시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분명 낙심하고 말 것입니다. 

4. 베드로전서의 기자는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기쁨의 원인 제공이 원천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나 밖으로부터 오는 어떤 외적인 자극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원인 제공자로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분명 훈련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닙니다. 유대인의 얘기를 하나 꺼내겠습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지혜로운 사람은 무화과 광주리에 담긴 무화과들 중에서 항상 제일 좋은 것부터 집어들고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말하기를, “나는 제일 좋은 무화과를 먹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거기다가 그는 자신에게 칭찬을 할 수 있습니다. “너는 얼마나 행운아인지 알아야 돼, 지금 사람들은 보리밥도 먹기 힘든 시절을 보내는데, 후식으로 무화과까지 먹고 있지 않아!” 등 등 말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9남매의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같은 피를 전해 받은 형제 자매들인데도, 생각하는 스타일이 얼마나 다른지 모릅니다. 항상 자신의 삶과 미래를 부모의 가난과 무성의 탓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래서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었지만, 또 다른 형제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항상 신앙적인 낙관론으로 힘을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이 있더라는 말입니다. 꼭 같은 부모에 대해서 한 쪽은 원망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에 반해, 다른 쪽은 너무도 큰 감사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더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 가지 사람 가운데서, 어느 쪽이 즐거움과 기쁨으로 살아가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해서 많은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시간이며 처지라고 하더라도, 감사할 많은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이나, 자신에 대해서 잠재력과 가능성을 늘 일깨우는 긍정적인 사고의 사람은, 그런 처지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어릴 때 배웠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항상 기쁘다.” 어떻게 항상 기쁠 수 있습니까만,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 나를 격려하는 동지들, 그리고 나를 늘 붙들고 계시는 든든한 하나님의 손길을 잊어버리지 않고, 내 자신에게 그 사실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사람은 가능한 일입니다. 

5. 한 두 번 실패했다고 인생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절망할 일도 아닙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우유부단하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의 기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으나,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살아 있는 소망을 갖게 하신 것과, 썩지 않을 천국의 기업을 잇게 해 주신 것을 기억나도록 하고 있습니다. 분명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읽을 때,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시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즐겁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의 입술이 주님을 찬양하는 입술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의 제목을 삼으십시오. 그리고 실천하십시오. “주여, 평화 주옵소서. 주여, 평화 주옵소서. 주여, 평화 주옵소서.” 오늘도 여러분을 지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하십시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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