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281(2021. 4. 23. 금요일).

시편 시 147:7-9.

찬송 53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빛은 남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랄 때가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나오는 빛입니다. 민들레가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황대방 선생의 책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의 표지에 나오는 글입니다. 그는 1985년 뉴욕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다가 구미유학생 간첩사건에 연루돼, 인생의 황금기인 30대를 감옥에서 보낸 사람입니다. 무려 13년 동안의 감옥 생활에서, 그에게 위안을 준 것은 감옥 한 구석에서 홀로 가꾸던 야생초 화단이었습니다. 그 때 체험을 편지로 쓴 책 [야생초 편지]를 읽고 수많은 독자들이 감동했지요. 세상을 향해 뛰어나가려던 감옥은 지옥보다도 못했을 겁니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그는 좌절했고, 또 그런 그의 곁에서 피어난 야생초들이 그에게 손을 내 밀었습니다. 아니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손을 먼저 내밀었던 간에 그들은 서로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이 깨달은 것을 진솔하게 편지로 써서 붙였습니다. 아픔과 슬픔 속에서 피어난 기쁨과 희망의 편지였는데요. 그것은 공부를 해서 이해하고 또 깨달은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곳에서 깨우친 대로 살고 있는 그의 진솔한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민들레처럼 말입니다. 그와 가까이 사는 이웃 중에 한 사람은 꽃 이름을 부를 때 꼭 님 자를 붙여 부른다고 합니다. 제비꽃 님, 참 꽃 님, 민들레님이라고 부르면, 꽃들이 자신들을 보면서 웃는 것 같다고 하네요. 남을 부러워하지 않고 남을 소중히 여기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우리 곁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에게 많은 위안이 됩니다. 이 꽃 이름뿐만이 아니라, 이 순간 우리를 위로해 주는 모든 것 모든 사물에 님 자를 붙여보며는 어떨까요<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424일 방송>

 

2. “인사(1-3)”, “속이는 자와 그리스도의 적(4-11)” 그리고 작별인사(12-13)”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속임수에 빠지기 쉽습니다. 한 두 마디 말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끝까지 다 들어야 할 이유도 속임수에 말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건강식품 광고는 중요한 재료 함량이 최고라고 합니다. 그런데 놓치지 말아야 할 말은 자사 기준으로라는 말이었습니다. 객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자기 회사 기준이었습니다. 어느 상조회사 광고는 가입하는 사람에게 500만원을 주겠다고 합니다. 끝까지 들어보면 가입한 사람들 가운데서 당첨되는 사람에게 준다는 뜻이었습니다. 요즘 보험회사 규정도 선전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음을 수십 년 보험금을 불입한 후에야 알게 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모집할 때는 전혀 해당 병에 걸리기만 하면 다 받을 것 같았는데, 깨알같이 쓴 규정에는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치명적인 경우들이 여럿 나열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속임수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저의 앞집에 양복점을 운영하는 한 사장이란 분이 있었는데, 사업이 신통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항상 새 양복에 새 구두 새 모자를 쓰고 다녀서 저의 어머니가 물으셨습니다. “경기도 시원치 않은데 그렇게 외모에 돈을 쓰시느냐?” 그 대답은 사업이 잘 되는 줄 알아야 손님이 올 것 아닙니까?” 위장술을 썼던 것입니다

   1세기 말의 초대교회 역시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과 적그리스도들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다음 세 가지로 속임수를 쓰기도했던 것입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으로 오신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고 세상의 가르침을 내세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상식이나 이론이 강해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셋째는 전혀 다른 것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출발은 그리스도였으나 곧 바로 세속적인 관심사들로 가득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속임수를 쓰는 적그리스도들은 우리 시대에도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 현실 세계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설교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물질이나 제도나 관계나 세상과 얽힌 것들을 무시하고 세상을 초월한 듯 말하는 경우 말입니다. 가령 돈을 사랑하지 말라.” “인간적 욕망을 부정하라.”고 외치는 사이비 교주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타락한 육신이라며 홀대하듯 말한다고 해서 세상을 등지고 살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세상의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살려낸 복음을 뒷전으로 몰아내 버리고, 세상에서 머리가 되려는 일에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것도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주보의 광고란에는 교회 안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인간적 활동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미래가 보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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