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45호(2021. 6. 26. 토요일).
시편 시 14:4-7.
찬송 28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책 [교동도의 시계수리공과 이발사]의 주인공은 지금도 교동도에서 실제로 시계수리소를 하는 분입니다. 30여년 넘게 하셨으니, 시계수리 역사의 관한 산증인이지요. 그런데 그분이 말하는 시계수리의 특징 역시 듣기에는 참 간단합니다. 시계란 열었다가 다시 그대로 똑같이 조립만할 줄 알면, 누구나 다 고칠 수 있다고 하지요. 시계란 열었다가 다시 제대로 꿰맞추기만 하면, 제대로 꿰맞춰졌다면 곧 고쳐진 것이라는 겁니다. 열어서 부품들을 하나하나 들어냈다가 다시 하나하나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것만으로도, 어느 부분에 먼지가 끼어서 작동이 멈춘 것인지, 태엽부분이 끊긴 것인지 저절로 알 수 있고, 그래서 그 부분만 해결하고 모든 부품을 제자리에 갖다 놓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말이 그럴 뿐이지, 그런 기능 역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절대 쉽게 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교동도의 그 주인아저씨도, 젊은 시절 3년간을 한 시계방의 허드레 일을 도와주면서, 수도 없이 헌 시계를 뜯고 닫고 조립하면서 간신히 익혔다고 합니다. 보기에 더없이 간단하고 쉬워 보이는 일에도, 다 저마다의 노력과 시간과 공이 들어 있다는 것. 세상의 어떤 일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게,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그날의 손목시계가 일깨워준 가르침이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6월 26일 방송>b.
2. “젊어서 맞은 아내와 함께 살라(1-23절)”을 읽었습니다. 표제어는 제가 붙인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뜨거운 화두는 “미투”가 아닐까 합니다. 미투(Mee Too!)의 물결에 인과응보를 받은 사람은 물론 선의의 희생자도 생겨났을 것 같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해석한다는 논리는 억울한 희생자도 가능한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아주 분명한 교훈의 말씀이 무려 3천 년 전에 기록으로 남은 것입니다. 시골 생활을 하면서 잘한 일도 더러 생겼습니다. 그 중 하나는 19년을 함께 살아온 한 부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저보다 15살이 위이고, 부인은 저보다 8살 위였습니다. 남편은 육군 대령 예비역이었고,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었습니다. 두 분은 모두 배우자를 사별한 상태에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재혼을 한 부부입니다. 그런데 달콤한 허니문 기간도 얼마 가지 못해서 싸움이 잦아진 것입니다. 금성에서 그리고 화성에서 온 사람들이었으니 그게 정상일지 모릅니다. 두 분은 자주 상대의 불만을 제 앞에서 하셨습니다. 남편이 본 아내는 전(前) 부인보다 여자다운 면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초등학생을 다루듯 명령조에 확인하는 말버릇이 너무 싫다는 것입니다. 이번엔 아내가 본 남편은 전형적인 고급장교 스타일로 완전 독재자 형이라는 것입니다. 쥐꼬리만 한 생활비를 주는데, 쪼개고 쪼개도 늘 허덕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분 다 헤어지고 싶은데, 문제는 위자료였습니다. 남편은 군인 연금에다가 부동산이며 억대의 재산가임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 그리고 딸에게 줄만큼 주었지만, 그들에게 더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 쪽에서 제게 SOS를 친 것입니다.
노인들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고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개척교회에서 얻은 최대의 교훈은 노인 중심의 목회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고집불통은 도무지 한계를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눈깔사탕이며 우유를 사들고 노인정을 문지방이 닳도록 다니면서, 이 시대의 노인의 역할을 해 보자고 6개월간 설득을 했지만, 끝내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버렸습니다. 매일 아침 마을길을 청소하면 운동도 되고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될 것이라고, 술주정뱅이가 많던 시절이라 노인 회원들이 찾아가 따끔하게 야단을 쳐서 버릇 고쳐보자고, 노인을 위한 생활 강좌를 열어 좀 더 나은 인생 말년을 준비하자고 했지만, 눈깔사탕이 녹을 때까지는 듣는 시늉 뿐, 매번 도레미 탕이었습니다. 한번 아니면 아니라는 데, 더 이상 뚫고 들어갈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런 땐 아킬레스건을 효과적으로 건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한 2년 전 큰 병으로 병원 신세를 졌을 때, 교통사고로 여러 달 입원을 했을 때, 누가 비지땀을 흘리며 정성껏 간호해 주었느냐고 따졌습니다. 아들과 딸은 삐쭉 얼굴 도장만 찍듯 가뭄에 콩나듯 찾아왔다 가곤했던 점도 콕 찍어 상기시켰습니다. 백 명의 효자 효부보다, 한 명의 악처가 더 낫다는 말도 새겨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도리를 끌어들였습니다. 가장 힘들고 연약한 인생 말년에 자신의 곁을 지켜준 사람을 박대하고서, 과연 천국에 갈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분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 부인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시내에 좋은 아파트 한 채를 자신 몫으로 받고, 함께 인생의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살고 계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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