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456호(2021. 10. 15. 금요일).
시편 시 35:7-9.
찬송 37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전시장에 놓여 있는 명품 그릇보다, 배고픔을 채워주는 소박한 밥그릇이 더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 손 가까이에 있는 모든 평범한 그릇들이 우리의 삶과 또 생명을 담고 있지요. 고려청자, 조선 백자로 대표되는 사기그릇은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질그릇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생활 용품이면서, 유구한 역사 때문인지 고고학과 미술사에 중요한 대상이기도 합니다. 질그릇을 토기 또는 도기라고 하다가, 조선시대부터 질그릇이라는 우리말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질그릇은 무척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시대에 따라서 약간의 변형도 있고, 또 화려하게 장식도 되지만, 형태의 단순함은 크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단순한 그릇의 형태는 조선 후기 옹기로 이어지고, 조용한 색감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그대로 나타나지요. 질그릇은 이렇게 쉽게 변하지 않아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 같은 그릇입니다. 그래선지 질그릇을 보면 못생기면 못 생긴 대로, 아주 정겹고 반가운 친구 얼굴같이 느껴지곤 하는데요. 예전에는 빗살무늬 질그릇이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하지만, 연대 측정결과 강원도 양양 오산 리에서 출토된 덧무늬 질그릇이 더 오래된 그릇으로 밝혀졌습니다. 밑이 좁고 위가 넓어 바알이라고 부르는 이 질그릇은, 크기에 따라서 대발, 중발, 소발이라고 하고, 또 흙으로 띠를 만들어 모두 여섯 줄의 평행선으로 구불구불하게 그릇의 외형을 장식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9월 13일 방송> a.
2. “사도의 권리와 의무 2(16-27절)”을 읽었습니다. 기독교 용어로 소명(召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업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이는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왕이 신하를 불러 어떤 임무를 맡기듯, 하나님께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떤 특정한 일에 부르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소명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갑자기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고 자랑스러울 수 있을 것입니다. 목사의 직무만이 아니라 농부나 빵굽는 일이나 전업 주부로 살아가는 것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에 대해서 이런 소명의식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복음 전도자로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소명을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거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랑할 만한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묵묵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뚜벅뚜벅 짊어지고 한평생을 살아갈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소명을 어찌할 다른 길이 없거나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직무로 깨닫게 된다면 그 한평생이 얼마나 신나고 자랑스러울까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가졌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소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은 자유인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종의 자세로 이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자유자와 종, 이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모습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생각 그리고 기분대로 살아가는 자유인을 우리는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옛말에 마당을 쓸려고 빗자루를 들었더니, 누군가가 “마당 좀 쓸어!” 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빗자루를 내동댕이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명령을 들으니까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자유인에서 종이 된듯한 느낌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자유를 소리쳐 부르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고 싶어서,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일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자발적으로 부모님께 순종하고, 자발적으로 선을 행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으냐는 것입니다. 저는 거룩한 명령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아라. 그리고 내일까지 숙제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그 거룩한 명령입니다. 그 명령을 따른 학생은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일찍 일어나거라. 밥은 꼭꼭 씹어 먹거라.”는 어머니의 말씀 또한 거룩한 명령입니다. 그렇습니다. 자발적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란 모래사장에서 유리구슬을 찾기 보다 더 힘듭니다. 사도는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종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 심정을 경기장에서 상을 받으려고 최선을 다해서 달음질 하는 운동선수를 빗대기까지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성취하기 위해 달리는 선수처럼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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